제1017장

“대표님, 옆에서 지켜만 볼 수 없어요.” “이건 명령이에요! 거기 가만히 있어요.” 명훈은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고개를 들었다. 전쟁터에서 전우들이 희생하는 것을 많이 봐왔고 생사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차안심의 죽음이 준 충격이 오래 갔고 그도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될뻔 했는데 혼신의 힘을 해서 재활한 이유는 염정훈을 지켜 더 이상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일이 또 벌어졌다. 그날 비오는 밤에도 그는 차안심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서정희가 정원정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그를 업어치기 하고 명훈을 넘어 동굴로 뛰어갔다. 이성을 잃었고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지 젼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속은 온통 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준 젊은 소장, 교통사고 당시 유리조각을 막기 위해 자신을 품에 안은 전남편, 녹음 하나로 모든 것을 버리고 뱀 동굴에 뛰어내린 바보 생각뿐이었다. 나쁜 자식, 나한테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렇게 죽어? 어떻게 감히 죽어! 서정희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굴로 달려가는 순간 정원정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깨달았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도 서정희가 여전히 염정훈을 잊지 못할 줄은 몰랐다. 땅에 누워 염정훈을 향해 달려가는 서정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깨달았다. 십년을 더 기다려도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정희 누나,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나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거에요? 눈을 감으면 매화나무에서 뛰어내려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던 어린 소녀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적어도 그때 그녀의 눈에는 자신만 보였었다. 서정희는 뱀 기피제를 몸에 뿌리지 않았고 뛰어내리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갑자기 피리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와 함께 붉은 뱀이 놀라운 기세로 동굴로 내려갔다. 즉시 염정훈 몸에 있는 뱀과 그의 주변을 맴도는 뱀들까지 전부 물러났다. 붉은 뱀은 그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