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7장

이 인간이... 무모하고 난폭하던 예전의 염정훈은 원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서정희에게 너무 낯설었다. “배고파.” 서정희는 바로 거절했다. 염정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 그러고는 다시 묵묵히 돌아서서 2인용 침대를 계속 만들었다. 멧돼지 고기를 물어뜯으며 자기 볼을 만진 서정희는 얼굴이 뜨겁고 빨갛게 달아올랐음을 느꼈다. 동굴 안의 온도가 너무 높았나 보다. 염정훈의 다부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남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어젯밤 약간의 자극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서정희도 아무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증오를 떠나 이런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감정이다. 서정희는 이런 생각만 하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염정훈과의 친밀한 스킨십은 과거의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 염정훈은 그녀가 이미 모든 것을 잊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검은 진흙탕에 빠진 과거의 서정희는 지금까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앞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면서 진정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서정희는 아직도 염정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마음을 앞으로 어떻게 접을 수 있을까? 분명 염정훈도 많이 변해 매사에 이렇게 신중해졌지만 이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것은 자신감 넘치는 염정훈이었다. 숲속에서 망설임 없이 멧돼지를 죽이는 결단력 있는 남자를 보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우유부단해지고 한 번 또 한 번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희야, 다 됐어.” 염정훈은 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며 방금 만든 침대를 테스트해 보았다. 별문제가 없자 그 위에 나뭇잎과 건초를 깔았다. 그러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호랑이라도 만났더라면 가죽을 벗겨 담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서정희와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