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1장

서정희는 갑자기 염정훈이 이해가 갔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던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신을 위해 죽었고, 죽기 전의 유일한 유언이 백지연을 잘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지연은 그걸 빌미로 삼아 염정훈을 압박해왔다. 서정희는 입지사지로 자신이 만약 이런 일에 봉착했다면 염정훈처럼 잘 처리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백지연이 염정훈의 인내심을 바닥내지만 않았더라도 염정훈은 백지연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성의 이름을 다시 백지연의 입에서 듣자 염정훈은 차갑게 비웃었다. “네 입에서 그 이름이 불러지는 것 자체가 역겨워. 지성이가 내 은인이지, 네가 내 은인은 아니지. 넌 오래 전에 이미 지성의 은혜를 소진했어.” 염정훈은 백지연의 두 눈을 직시하면서 말했다. “예전에 정희를 크루즈에서 밀어뜨린 당일, 넌 이미 내 마음속에서 백 번 죽여도 성에 차지 않는 존재가 됐어.”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차창을 올렸다. 그러자 진영은 바로 출발했다. 백지연은 있는 힘껏 앞으로 나아가다가 눈에 넘어지면서까지 손을 내밀어 염정훈을 불렀다. “정훈아, 제발 가지마. 잘못했어.” 이때 백현이 천천히 그녀의 뒤에 다가와서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왜 아직도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이거 놔. 날 다치지 마.” 그러자 백현은 마귀의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더러 다치지 마라? 그럼 염정훈을 기대하는 거야? 넌 서정희의 발꿈치와도 비교가 안 돼. 너 같은 여자는 아무리 애원해봤자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백지연은 비명을 지르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염정훈에게 닿을 수 있었는데. 그 한 발짝을 잘못 내디뎠기에 오늘 이 처지가 되었다. 염정훈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서정희를 품에 안았다. 차 안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러자 서정희가 염정훈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말을 해.” “정희야.” 염정훈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낮은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