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신지환은 5년 전에 비해 더 성숙하고 차분해졌지만 성아린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꽃다발을 건네준 신지환은 자연스럽게 성아린의 허리를 감싸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성아린이 웃으며 신지환의 품에 안겼다. 약손가락에 낀 백금 커플링이 두 사람의 행복한 생활을 알리듯 불빛 아래 눈이 부시게 빛났다.
엔딩 퍼포먼스에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그러자 배연성이 배수혁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저 사람 누구예요? 너무 예쁘다. 연예인이에요?”
배수혁은 대답하지 않고 무대에 선 선남선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숨이 올라오지 않아 본능적으로 반지가 있던 약손가락을 만졌지만 그곳에는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반지 흔적만 남아 있었다. 방관자가 된 지금도 배수혁은 그들에게 불필요하고 우스운 존재일지 모른다.
배수혁은 연주회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아들을 데리고 떠들썩한 공연장을 조용히 빠져나가 비헨나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 경인시.
배수혁은 혼자 차를 타고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산 정상의 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배수혁이 16살 되던 해 성아린에게 고백한 곳이었다.
공원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새겼던 벚나무는 오래전에 생기를 잃고 죽어버렸지만 여전히 깡마른 나뭇가지를 하늘로 힘껏 뻗어 올리고 버텼다.
벚나무로 걸어간 배수혁은 손을 내밀어 말라서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을 만졌다. 차가운 바람에 바닥에 쌓였던 낙엽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차가운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으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햇살이 쨍쨍하던 오후, 16살의 성아린이 하얀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높게 묶은 채 봄눈 녹듯 따듯하게 웃으며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장난쳤다. 동갑의 다소 풋풋한 배수혁은 귀까지 빨개지며 용기 내어 성아린 앞으로 달려가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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