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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급해진 도우미들이 주구장창 배수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성아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걸지 마요... 안 받을 거예요.” 그러더니 우는 것보다 더 안쓰럽게 웃었다. “지금쯤... 지수아랑 생일 보내고 있을 거예요.” 도우미가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해열제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성아린에게 먹였다. 약을 먹은 성아린은 그대로 깊은 잠이 들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 배수혁이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오자 한기도 따라서 들어왔다. 어두운 얼굴은 그 한기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성아린.” 침대맡으로 다가간 배수혁이 뼈를 부서버릴 것처럼 큰 힘으로 성아린의 손목을 낚아챘다. “너 왜 안 와? 수아가 너 밤새 기다렸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고. 나도 마음 아파서 함부로 못하는데 네가 뭐라고 울려?” 배수혁이 잡고 흔들자 성아린은 머리가 띵해졌지만 그 말에 베인 가슴은 여전히 날카롭게 아팠다. 언젠가 성아린이 울면 배수혁도 꼼짝 못했는데 말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뼈에 새길 정도로 사랑했던, 그러나 이제는 낯설기만 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성아린의 목소리는 고열로 갈라져 있었지만 무서울 정도로 평온했다. “나 죽일 거야?” 배수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네가 수아를 울렸으니까 너도 실컷 울어야지.” 핸드폰을 꺼내든 배수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성아린의 친구, 동료, 사촌동생, 누구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다 데려와. 성아린을 울리는 사람에게 200억을 상으로 준다고 하고.” 반시간 후, 별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성아린의 제일 친한 친구 임유라였다. 함께 쇼핑하고 비밀을 나누며 슬플 때 서로 위로해주던 친구였지만 돈 앞에 장사는 없었다. “아린아, 그냥 울어주면 안될까?” 임유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00억이면 이번생이 아니라 몇번 더 태어난다 해도 다 못쓸걸?” 성아린이 전혀 흔들리지 않자 임유라가 갑자기 따귀를 내리쳤다. “고상한 척하긴. 너 아직도 네가 사모님이라도 되는 줄 알아?” 성아린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여전히 울지 않았다. 곧이어 성아린의 동료, 먼 친척, 심지어는 어릴적부터 보살펴주던 시터까지 나섰다. “대표님도 이제 지아 씨 싫다는데 무슨 낯짝으로 여기 계속 붙어있는 거예요?” “지수아 씨 너보다 훨씬 부드럽더라. 대표님의 마음이 변할만 하지.” “아이를 잃었다면서요? 나쁜일을 너무 많이 해서 벌받은 거 아니에요?” 성아린은 깨진 도자기 인형처럼 그들에게 에워싸여 욕이란 욕은 다 먹었고 심지어는 손찌검까지 당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참는 바람에 입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끝내는 눈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마음이 죽은 사람에게 눈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파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던 배수혁은 퀭하지만 고집스러운 눈동자를 보며 점점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왜 울지 않는 거지? 왜. 도대체 왜.’ 인내심을 잃어가는데 성아린의 사촌동생 성미주가 거실 진열장에 놓인 정교한 액자를 힐끔 쳐다봤다. 그건 성아린이 돌아가신 부모님과 남긴 유일한 가족사진이었다. 성미주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액자를 움켜쥐더니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언니. 이래도 안 울면 나는 이거 태워버릴 수밖에 없어요.” 초점을 잃어버린 성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들고 애원했다. “안돼. 미주야. 그건 내가 아빠, 엄마랑 찍은 유일한 가족사진이야. 제발 부탁인데 그러지 마.” “울어요. 울면 돌려줄게요.” 성미주가 약 올리듯 켠 라이터의 불길은 이미 액자 변두리에 닿았다. “제발 부탁이야... 그러지 마... 우리 친척이잖아. 매몰차게 그러지 마...” 멘탈이 나간 성아린이 애원하며 눈물을 글썽였지만 여전히 한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배수혁은 사진 하나에 이렇게 비굴하게 애원하는 성아린을 보며 심장이 저릿했다. 그 사진은 배수혁도 잘 알았다. 성아린이 늘 보물처럼 끼고 살던 사진이었다. “태워.” 배수혁의 목소리는 자기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한 매정함이 묻어났다. 지령을 받은 성미주는 망설임없이 활활 타오르는 액자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안돼.” 성아린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바닥에 철푸덕 꿇어앉아 재로 타들어가는 사진을 구하려고 맨손으로 불을 껐지만 이미 늦었다. 사진은 불길속에 신속하게 쪼그라드는가 싶더니 거멓게 타들어가며 아버지의 부드러운 미소와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을 삼켜버렸고 결국 한웅큼의 재가 되었다. 힘껏 손을 뻗어도 만져지는 건 뜨거운 재와 살을 파고드는 화상뿐이었다. 꾹 참았던 눈물이 순간 봇물이 터진 것처럼 끝도 없이 터져나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왈칵 쏟아냈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이 마치 평생 흘릴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배수혁은 바닥에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며 우는 성아린을 보고 쾌감을 느끼기는커녕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너무 답답했다. 맨손으로 불을 끄느라 화상을 입어 물집이 올라온 손가락을 보고 본능적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발이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성아린은 극한의 슬픔과 고열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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