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음악이 갑자기 멈추며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강도윤은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가르며 다가왔고 뒤에는 민소정이 조용히 따라왔다.
“무슨 일이야?”
강도윤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곧 누군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모든 말을 들은 강도윤은 아무 표정 없이 손짓해 부하들에게 남자를 끌어가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민세희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세희의 손에는 아직 깨진 술병 조각이 들려 있었다. 붉게 튄 술은 치맛자락을 적셨고 그녀 역시 고개를 돌려 강도윤을 바라봤다.
눈꼬리에는 아픔이 어른거리는 듯 붉은빛이 스치고 있었다.
강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양복 재킷을 벗어 조용히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유리 조각이 흩어진 바닥에서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가 낮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봤어? 세희야. 네 뒤처리를 해줄 사람은 나뿐이야. 그리고 난 기꺼이 해. 나만이 널 평생 지켜줄 수 있어.”
민세희는 그것이 그가 오늘 자신을 데려온 의도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가 그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강도윤을 보지 않은 채 옆에 서 있는 민소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곁에 여자가 이렇게 많으면서 나까지 신경 쓸 여유는 있네. 너무 바쁜 거 아니야?”
강도윤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가 잠시 굳었다가 다시 곧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친밀하게 민소정을 끌어안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민세희를 바라보며 입가를 올렸다.
“그래, 세희야. 너도 봤잖아. 경쟁이 좀 치열해. 그러니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민소정은 곧바로 그의 품에 더 파고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강 대표님, 언니한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언니는 그냥 기분이 안 좋을 뿐이에요.”
민세희는 비웃듯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결혼식은 못 올렸어도 나랑 강도윤은 혼인신고를 한 사이야. 민소정, 네 형부 꼬시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간절한걸, 사람들이 모를까 봐 그래?”
민소정의 눈가는 순식간에 붉어졌다.
“강 대표님, 아니에요... 저는 그냥 언니가 안쓰러워서 그런 거예요.”
민세희는 강도윤을 보지도 않고 그가 걸쳐준 재킷을 바닥에 내던진 뒤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 그러면 네 형부한테 이쁨이나 받아.”
강도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표정이 굳어갔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자선 경매 순서가 시작되었다.
잠시 연회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에메랄드 목걸이가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는 다시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민세희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세웠다. 바로 그녀가 전당포에 맡겼던 어머니의 장신구였다.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도윤도 바로 알아본 듯했다.
그는 민세희의 표정을 확인하듯 힐끗 바라보고 곧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
오늘 밤 최고가를 불러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었다.
민세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희미한 기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꿈틀거렸다.
낙찰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고 목걸이는 강도윤의 손에 들어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몸을 돌려 그 에메랄드 목걸이를 직접 민소정의 목에 걸어주었다.
“너에게 잘 어울리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민소정은 감격한 듯 입을 가렸다.
“강 대표님, 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어떤 보석이든 사줄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굳이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 것이다.
민세희는 가슴속이 뜨겁게 뒤틀리며 고통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억지로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
“강 대표님은 우리 민씨 가문 돈으로 새 애인 챙기는 데 아주 익숙하시네.”
강도윤은 부드럽게 웃었다.
“세희야, 이제 민성 그룹은 없어.”
그 말은 바늘처럼 심장을 찔렀다. 순간 민세희의 시야가 흐려지고 심장이 쥐어짜이듯 아팠다.
입 안에 비릿한 맛이 올라왔고 손에 든 휴지로 입을 가리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선명한 핏자국이 휴지를 적셨고 그녀는 그것을 아무렇게나 구겨버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강도윤은 미간을 좁히며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 가까이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민세희는 곧바로 거리를 두었다. 그녀는 나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신들 때문에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아. 강 대표님, 본처 앞에서 첩이랑 애정 행각을 벌이는 취미라도 있으신가 본데, 내가 두 사람 이부자리라도 펴 드릴까?”
강도윤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민세희, 너...”
민소정은 재빠르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겉으로는 말리는 듯하지만 실상은 불을 더 붙이는 어조였다.
“형부, 화내지 마세요. 언니는 그냥 몸이 안 좋을 뿐이에요. 그런데 언니 반응이 좀 과하긴 하네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임신한 줄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