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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네. 동의서는 모두 받아 뒀습니다. 임지유 씨 신장이 지아 양과 일치합니다. 지아 양은 급성 신부전이라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사모님이 눈치채실 겁니다.” “평생 모르도록 해. 흉터를 물으면 교통사고 때문이라고만 하라고.” 임지유는 몸을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눈꺼풀은 납처럼 무거웠고 메스가 살을 스치는 냉기가 스며들더니 몸속에서 무언가가 뽑혀 나가는 공허가 밀려왔다. 그리고 곧 꿰매는 감각이 이어졌다. 임지유는 임신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차현우는 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매일 입을 맞추며 말했다. “지유야, 흉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아. 내가 매일 오일 발라 줄게. 꼭 지켜 줄게.” 그 다정함이 연구보다 더 진지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지시로 수술칼이 그녀의 배를 길게 가로질렀고 차갑고 선명한 흉터만 남았다. 한참 뒤, 수술실 문이 열렸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지아는 어때?” 차현우의 목소리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은 잘 됐습니다. 다만 급성 신부전이라 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신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임지유에게는 신장이 하나 더 있어. 그때도 쓰면 돼.” 임지유는 수술대 위에 누운 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의식이 뚝 끊겼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아가 원하는 건 결국 자신의 목숨이었고 그마저도 빼앗기게 되어 있다는 걸.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차세준은 열이 내려 있었고 작고 여린 몸이 병상 곁에 엎드려 있었다. 임지유가 눈을 뜨자 까만 눈동자가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엄마, 엄마!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아빠가 그랬어요. 엄마가 제 간식 사러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다 제 잘못이에요.” 차세준은 죄책감에 북받쳐 임지유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잠시 뒤, 차현우가 조용히 다가와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나서 다행이야. 큰일은 아니고... 차에 부딪히면서 배에 큰 상처가 났어. 다행히 수술은 잘됐어.” 임지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연구실 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 안에 있는 노트북 좀 가져다줘. 다시 계산한 데이터가 몇 개 있는데 오늘 밤 안에 수정해 놔야 해.” 그 말을 들은 차현우의 얼굴에 잠깐 미묘한 감정이 스쳤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나는... 우리가 처음이었던 날로 설정했어.” 임지유는 떨리는 팔로 차세준을 힘껏 안았다. 그날은 차세준이 생긴 날이었다. 한때는 두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던 날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의미 없는 과거일 뿐이었다. 임지유는 그 노트북을 꼭 차현우 손으로 가져오게 하고 싶었다. “의사 말로는 출혈이 많아서 그랬대. 며칠만 쉬면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노트북 금방 가져올게.” 차현우는 병실을 나섰다. 임지유는 차세준을 안으며 말했다. “세준아, 우리… 이제 정말 떠날 수 있어.” 임지유는 차세준의 스마트워치를 열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2시간 뒤, 호성 병원 옥상에서 헬기 이륙]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차현우가 연구실 노트북을 들고 왔다. 차세준이 좋아하는 간식이며 임지유가 입맛 돋는다고 했던 것들도 함께였다. “내가 먹여줄게.” 차현우가 숟가락을 들었지만 임지유는 고개를 돌렸다. “됐어. 나 지금 일해야 해.” “말만 해. 대신 내가 수정할게.” 도움을 주려는 차현우에게 임지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 실험은 네가 관여한 게 아니야. 내가 직접 할게.” 차현우는 아무 말 없이 병실 한쪽에 앉아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 시간 동안 임지유는 실험 데이터를 고치는 척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그를 따돌릴 방법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차현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임지유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대표님, 지아 씨가 방금 깨어나셨습니다. 계속 대표님을 찾고 계세요. 안 보인다고 울기까지 하셨어요. 얼른 와주세요.” 전화를 끊은 차현우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잠깐만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게.” 문을 나서기 전, 그는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했다. “지유야, 너랑 세준이는 언제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나, 너랑 절대 이혼 안 해. 기다려줘.” 하지만 임지유의 마음속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기다림은 이제 끝이야. 다시는 없어.’ 차현우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서 헬기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차세준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엄마! 이제 진짜 떠나는 거예요?” 임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흐리기만 했던 하늘이, 마침내 환하게 개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리에는 아직도 진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무 말 없이 꾹 참았다. 한 손으론 차세준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다른 손으론 노트북을 들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곧이어 두 사람은 헬기에 올라탔다. 그녀를 마중 나온 책임자가 물었다. “지유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두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하나는 제 친구에게 200억을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차현우와의 이혼도 정리해 주세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요, 차진 그룹 연구실은 없애 주세요." 그 안에는 임지유와 차세준이 함께 만들어 온 수많은 특허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제 차현우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 위해선, 미련 없이 버려야 했다. 10년 전, 임지유가 차현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가진 것도 기댈 사람도 없는 외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임지유는 차세준이라는 소중한 아들이 있고 오롯이 자신만의 꿈도 품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임지유가 살아갈 세상에는 차현우라는 사람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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