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건물 위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아래층으로는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물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임지유와 차현우의 집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차현우는 타들어 가는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맨몸으로 계단을 타고 위층을 향해 올라갔다.
그토록 애쓰며 만든 연구실. 지금은 불이 꺼졌지만 그 안은 이미 시커먼 잿더미와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던 차현우에게 소방관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차 대표님, 안에 있던 물품은 구조가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차현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연구실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실험 도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 있었고 벽은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안은 수많은 밤낮을 임지유와 함께 보낸 공간이었다.
일에 몰두하던 시간, 잠시 쉬며 서로에게 기대던 순간들. 사랑했고 함께 꿈꿨던 모든 것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차현우는 문득, 모든 게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되짚기 시작했다.
‘지아 때문인가?’
어쩌면 맞고 어쩌면 아니었다.
차현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아의 울먹이던 얼굴이 아니라, 임지유의 얼굴이었다.
사실, 그는 임지유가 울기를 바라고 있었다.
10년 동안, 임지유는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침착했고 차분했다. 처음 임지유가 차현우를 좋아했을 때도 그랬다. 조용히 곁을 지키며 필요한 걸 다 알아서 챙겨줬다.
차현우가 배가 고픈 기색만 보여도 그녀는 밥을 챙겨왔고 가진 게 많지 않음에도 비싼 도시락을 사 주기도 했다.
친구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는 그 앞을 가로막고 주먹을 대신 맞을 뻔하기도 했다.
그녀는 차현우가 안아올 때 늘 어색해했고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말없이 몸을 맡겼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함께 창업했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다시는 차현우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너무 강해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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