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사람들은 모두 조민아는 남성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붉은 장미라고 말했다. 피부가 하얗고 얼굴은 눈부시게 예쁜 데다, 하고 싶은 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해외에서 가장 미친 듯이 놀던 그해, 조민아는 아버지에게서 온 긴급 메시지 한 통에 불려 급히 귀국했다. 메시지에는 차갑기만 한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즉시 귀국해서 서윤성과 결혼해.]
서윤성은 부대에서 가장 젊고 유망하다고 소문난 장교였다. 차갑고 금욕적이며, 엄격하고 절제적인 사람이었다. 자유분방한 조민아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조민아는 시끌벅적한 걸 좋아했고, 서윤성은 고요한 걸 좋아했다.
조민아는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황당한 짓도 적지 않게 했지만, 서윤성은 규율을 지키는 게 몸에 밴 데다 군기가 하늘처럼 엄했다.
조민아는 밝고 자유로워서 남자 친구를 바꿔 사귀는 것도 옷 갈아입듯 했지만, 서윤성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유명했고, 여성 군인의 손끝 한 번도 건드려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바른 사람과 결혼한다니, 조민아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래서 조민아는 이 결혼을 깨뜨리려고 온갖 수를 다 썼다.
조민아는 로즈 클럽에서 사흘 밤낮으로 춤춰대며 난리를 쳤다. 서윤성이 질려 물러나길 바랐다. 그런데 서윤성은 빳빳하게 다려진 군복을 입은 채, 각기 다른 시선이 쏟아지는 한가운데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조민아를 업어서 집으로 데려갔다.
조민아는 사령관 댁 정원의 울타리를 일부러 들이받아 날려 버렸다. 조민아는 서윤성이 자신을 황당한 여자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그러나 서윤성은 직접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고, 돈을 물어 수리까지 해 주고, 일을 조용히 눌러 버렸다.
조민아가 앞에서 거리낌 없이 사고를 치면, 서윤성은 늘 말없이 뒤에서 뒷수습했다.
이번에도 조민아는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에 잡혀 왔다. 그때는 서윤성이 사흘짜리 긴급 임무를 막 끝낸 직후였다. 군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눈 밑에 붉은 실핏줄이 가득한 얼굴로 헐레벌떡 경찰서로 달려왔다.
지쳐 보이는데도 꼿꼿한 서윤성의 등을 바라보자, 조민아의 마음에 드물게 해명하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조민아는 이번에는 자신이 일부러 난장판을 만든 게 아니라, 상대가 조민아가 예쁘다고 먼저 치근대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조민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윤성은 조민아의 앞에 와서 조용히 손을 잡았다.
조민아의 손끝에는 가느다란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조민아 자신도 몰랐는데 서윤성은 바로 알아차렸다. 서윤성은 군복 주머니에서 구급팩을 꺼내 고개를 숙여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 줬다.
“아파?”
서윤성이 묻는 그 순간, 조민아가 준비해 둔 모든 해명과 변명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서윤성이 고개를 들어 차분한 눈빛으로 조민아를 바라봤다.
“네가 얼마나 큰 사고를 쳤든, 얼마나 큰 일을 터뜨렸든 상관없어. 그런 건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어. 내가 신경 쓰는 건 하나야. 여기... 아파?”
‘여기... 아파?’
조민아는 정신이 흔들렸다. 마음 가장 부드러운 곳을 무언가가 세게 들이받은 것처럼, 순간에 조민아의 모든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다.
어릴 때부터 조민아가 사고를 치면 아버지는 늘 창피하게 굴지 말라고 나무라기만 했다. 계모 이란희도 그럴싸하게 얌전하게 다니라며 타이르기만 했다. 누구도 조민아에게 아프지 않냐고, 억울하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조민아는 쉰 목소리로 저도 모르게 말했다.
“윤성아, 우리 이제 결혼해도 돼.”
서윤성의 깊은 눈동자에 아주 옅은 빛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전에, 질문 하나 할게.”
조민아는 자신답게 자존심과 독점욕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윤성아... 넌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사람 있어? 내 남편은 온전히 나한테만 잘해줘야 해.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으면 절대 안 돼. 과거든, 지금이든 앞으로든, 오직 나만 바라봐야 해.”
서윤성은 조민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피하지도 않았다.
“없어. 너뿐이야.”
그래서 조민아는 결혼했다.
남성시에서 가장 눈부시고 제멋대로 피어난 붉은 장미가, 부대에서 가장 차갑고 금욕적인 소나무 같은 남자에게 시집간 것이다.
결혼 뒤, 남성시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누구를 건드리든, 서 소장님의 부인 조민아만은 건드리지 마라.”
조민아가 하늘을 찌를 사고를 쳐도, 냉혹한 염라대왕 같다는 그 서윤성 소장이 언제나 조민아 뒤에 서서 지켜준다는 것이었다.
조민아 역시 이 얼음 같은 남자가, 조민아라는 불꽃에 진짜 녹아내렸다고 믿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민아는 서윤성이 집에 두고 간 서류를 전해 주려고 부대로 갔다. 훈련장 근처에 도착하자 장교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 친목 행사를 하는 듯했다.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서윤성은 동료 몇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게임에서 진 모양인지, 다들 진심을 말하라며 야유를 보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물었다.
“서 소장님! 그럼 말해 보세요. 평생 살면서 가장 큰 거짓말이 뭐였습니까?”
시끌벅적하던 자리가 조금 조용해졌다. 늘 엄격하고 정직하기로 유명한 지휘관이니,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서윤성을 바라봤다.
서윤성은 잠시 침묵했다. 불빛 아래 보이는 옆얼굴이 어딘가 어둡고 알 수 없었다. 서윤성은 책상 위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마침 문가에 다다른 조민아의 귀에는 또렷이 들어왔다.
“누가 나한테 물었어.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던 사람이 있냐고.”
“나는 그 여자한테... 없다고 말했지.”
쾅!
조민아는 머릿속에서 천둥이 터진 것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거짓말이었어? 서윤성에게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던 사람이 있어? 그런데 왜 나한테는 없다고 말했지? 그럼 나랑 결혼한 목적은 대체 뭐야?’
조민아는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순식간에 온몸으로 치솟았다. 얼음 구덩이에 떨어진 것처럼 사지가 덜덜 떨렸다.
조민아가 그대로 달려가 따져 묻으려던 순간, 박태준이 급히 서윤성에게 달려와 귓가에 몇 마디를 낮게 속삭였다.
그때, 늘 냉정하던 서윤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서윤성은 벌떡 일어나더니, 주변에 설명할 겨를도 없이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둔 군복 외투를 낚아채 밖으로 향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바람이 일 정도였다.
서윤성은 문가에 서 있는 조민아를 보지도 못했다.
서윤성이 조민아 곁을 지나칠 때, 어깨가 조민아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서윤성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했다. 모든 감각을 닫아 버린 사람처럼, 오직 한 목표만을 향해 내달렸다.
조민아는 휘청이며 중심을 잡았다. 어깨가 아팠지만 더 아픈 건 마음이었다.
조민아는 통증과 끓어오르는 의심을 억누르며, 본능적으로 서윤성을 따라갔다.
서윤성은 지프에 올라탔다. 엔진이 포효하듯 울부짖더니 차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조민아도 곧장 차를 잡아타고, 뒤를 바짝 붙었다.
차가 멈춘 곳은 남성시 외곽의 버려진 창고 앞이었다.
서윤성은 박태준을 데리고 뛰어들어갔고, 조민아는 뒤따라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창고 안에서는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납치범이 칼로 한 여자를 붙잡고 있었다.
여자는 수수한 옷차림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 여자를 본 순간, 서윤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일그러졌다. 목소리에는 자신도 숨기지 못한 떨림이 실려 있었다.
“놓아.”
납치범이 비웃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잡았네! 서윤성, 밖에서는 네가 네 멋대로인 부인 조민아를 끔찍하게 아낀다 떠들어대지. 하지만 나만은 알아. 네가 진짜 가슴에 품은 사람은 이 여자지. 한은별!”
‘한은별?’
조민아는 심장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처럼 철렁 내려앉았다.
납치범은 계속 고함쳤다.
“저번 변경 작전에서 네가 내 형제들을 죽게 만들고, 불구로 만들고! 오늘은 나도 네가 사랑하는 걸 잃는 맛을 보게 해 주지!”
서윤성의 손등에 핏줄이 툭 솟아올랐다. 그래도 서윤성은 끝까지 목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복수할 사람은 나야. 한은별은 놔. 나한테 덤벼.”
“놔주라고? 그래. 가능하지!”
납치범이 서늘한 빛이 도는 비수를 발로 차 던졌다. 그러자 비수가 서윤성 발치에 떨어졌다.
“너 가슴에 한 번 찔러. 그럼 놔줄지 말지 생각해 보지.”
“안 돼! 윤성아, 안 돼!”
한은별이 고개를 저으며 울부짖었다. 눈물이 끊어진 구슬처럼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서윤성은 한은별을 깊게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조민아가 지금껏 서윤성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서윤성은 망설임 없이 허리를 숙여 비수를 집었다.
서윤성은 그대로 자기 심장 쪽을 향해, 비수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조민아는 뒤편 어둠 속에서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누르지 않았다면 조민아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서윤성은 다른 여자 하나 때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 죽으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