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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제... 한은별은 풀어줄 거지?” 서윤성은 얼굴이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몸을 곧게 세우고 버텼다. “한은별을 놓아줘. 나한테 와. 나한테 뭘 하든지...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아...” “하하하!” 납치범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진짜로 한은별을 미친 듯이 사랑하나 보네. 그럼 더더욱 한은별을 죽여야지. 너도 절망이 뭔지 똑똑히 맛보게 해 주마!” 납치범이 칼을 들어 한은별에게 내리치려던 바로 그 순간, 주변에 매복해 있던 경호병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순식간에 납치범을 제압했다. 곧장 묶였던 몸이 풀리자, 한은별은 서윤성에게 울먹이며 달려들었다. 목이 메어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는 채로, 서윤성의 가슴을 붙잡고 흐느꼈다. “서윤성! 미쳤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아? 너 이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서윤성은 힘겹게 손을 들어 한은별의 눈물을 닦아줬다.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울지 마... 나 안 아파...”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려 놓고 안 아프긴 뭐가 안 아파!” 한은별은 화가 나면서도 조바심이 나 미칠 것 같았다. 한은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피가 묻은 비수를 덥석 집더니 제 팔을 세게 그었다. 피가 순식간에 솟구쳤다. “너 뭐 하는 거야?” 서윤성의 얼굴이 확 변하더니 급히 한은별의 손목을 붙잡았다. 한은별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서윤성을 올려다봤다. 목소리는 부서질 듯 갈라졌다. “윤성아, 이제... 알겠지? 네가 다치면, 나도 여기...” 한은별은 자기 심장 쪽을 가리켰다. “나도 너랑 똑같이 아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런 목숨 내놓는 짓 다시는 하지 마. 절대로...” 서윤성은 한은별의 팔에 난 그 흉측한 상처와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다가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서윤성은 한은별을 세게 끌어안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앞으로는... 나도 내 몸을 지킬게. 반드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의료진이 들것을 가져와 서윤성을 옮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창고 뒤편에 서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조민아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민아는 온몸에서 힘이 빠진 채 차갑게 식어 갔다. ‘서윤성과 한은별은... 대체 어떤 사이였던 걸까.’ 서윤성이 한은별을 바라보던 눈빛, 한은별을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을 찌르던 서윤성, 서윤성 때문에 자기 팔을 그어버릴 만큼 단호했던 한은별... 남이 끼어들 틈조차 없는, 생사까지 함께 묶인 듯한 그 유대감이 조민아의 머릿속에서 수없이 되감기며 차갑고 날카로운 의심으로 변해 갔다. 조민아는 미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조민아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조민아가 고개를 들자, 한은별이 어느새 조민아 앞에 서 있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은별이 손을 들어 조민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조민아는 얼굴이 돌아가며 비틀렸다. 뺨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순식간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조민아는 원래 원한이 생기면 갚고, 당하면 바로 되갚는 사람이었다. 조민아는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들어 그대로 되받아치려 했다. “좋아. 더 때려! 차라리 날 때려죽여 버려!” 한은별이 오히려 턱을 치켜들고 눈을 감았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울먹임과 증오가 뒤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차피 너희 조씨 가문이 나랑 윤성... 우리 인생을 망쳐 놨잖아! 이번 생에 나는 윤성이랑 함께할 수 없어. 그러니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조민아가 들어 올린 손이 떨리며, 허공에서 굳어 버렸다. 조민아는 뺨과 가슴 한가운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억지로 눌러 삼키고, 한은별을 똑바로 노려봤다. 이를 악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랑 서윤성은... 대체 무슨 관계야?” 한은별은 조민아를 바라보다가, 처연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은별은 진실을 남김없이 꺼내 놓았다. 2년 전, 한은별과 서윤성은 서로를 좋아했고 이미 결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 한은별은 희귀 혈액병 진단을 받았다. 살기 위해서는 극도로 귀한 수입 특효약이 필요했다. 그 약은 남성시에서 조민아의 아버지, 조성우만이 구할 수 있었다. 서윤성은 한은별을 살리기 위해 조성우를 찾아가 부탁했다. 하지만 조성우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성우에게는 딸 조민아가 있었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에, 말썽이 끊이지 않는 딸이었다. 누군가 곁에서 단단히 붙잡고 제대로 다스려 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윤성이 조민아와 결혼하고, 조민아에게 아이까지 낳게 해 준다면, 조성우는 약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어 서윤성은 조민아와 결혼했다. 그와 동시에, 한은별과 함께할 가능성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진실을 듣는 순간, 조민아는 머릿속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얘졌다. 조민아는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질 때까지 아랫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네.’ 그래서 조민아가 아무리 난리를 치고, 아무리 엉망으로 굴어도, 서윤성은 끝까지 결혼을 밀어붙이며 절대 놓지 않으려 했던 거였다. 그래서 결혼 뒤에는 조민아 뜻대로 다 맞춰주면서도, 유독 잠자리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집요했다. 거의 밤마다 조민아를 붙잡고 늘어졌고, 몇 번이나 조민아가 지쳐서 빌었는데도 서윤성은 만족하지 못했다. 조민아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조민아가 관용과 애정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다른 여자를 살리기 위해, 서윤성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한 굴종이었을 뿐이었다. 거대한 모욕감과 통증이 조민아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 조민아는 한은별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은 칼날처럼 차가웠다. “방금 말한 게... 한 마디라도 거짓이면, 나는 너를 반드시...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게 만들 거야.” 조민아는 잠시 숨을 삼켰다. 목소리는 부서진 듯 단단했다.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너한테도, 서윤성한테도,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줄게.” 조민아는 더는 한은별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돌아서서 조씨 가문 저택으로 쳐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광경은 더 역겨웠다. 바람기 어린 웃음을 얼굴에 걸친 조성우가, 온화하고 얌전한 척 앉아 있는 이란희와, 유난히 아끼는 혼외 자식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마치 세상에 아무 문제도 없는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조성우!” 조민아는 성까지 또렷이 불렀다.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물어볼 게 있어요.” 조성우의 얼굴이 굳었다. 조성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조민아를 꾸짖었다. “버릇이 없군! 서윤성과 결혼했으면, 서윤성의 침착함을 반이라도 배워야지!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내가 없다는 거냐? 갈수록 말이 심해지는구나!” 조민아는 눈이 붉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민아는 성큼 다가가 두 손으로 두꺼운 식탁보를 움켜쥐고, 힘껏 밥상을 뒤집어엎었다. “와장창!” 그릇과 접시가 산산이 깨져 바닥에 쏟아졌고, 국물과 음식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란희와 아이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조민아는 엉망이 된 식탁 앞에 서서 조성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제는... 저랑 제대로 얘기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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