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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서윤성은 처음의 충격과 믿기지 않는 감정이 지나가자,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너무 초라해서 감히 바라지도 못하던, 아주 미약한 희망이었다. 아이. 서윤성과 조민아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건 두 사람 사이를 다시 잇는, 끊어낼 수 없는 새로운 끈이었다. ‘이 아이만 있으면... 민아가 그렇게까지 날 단호하게 떠나려 하지는 않겠지? 나에게도... 아주 조금이라도 되돌릴 기회가 남아 있을까?’ 서윤성은 조심스럽게 조민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조민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혐오와 결연함이 가득한 그 시선이, 방금 피어오르던 서윤성의 초라한 희망을 한순간에 산산이 부숴 버렸다. “지워.” 조민아의 목소리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한겨울 얼음처럼 차가운 말이 거실에 또렷하게 울렸다. “난 이 아이 못 낳아.” 서윤성은 보이지 않는 손에 심장이 거칠게 움켜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서윤성은 급히 다가가 조민아 앞에 주저앉았다. 손을 잡으려 애쓰며, 전에 없던 애원과 떨림을 목소리에 실었다. “민아야, 안 돼... 제발 안 돼. 우리 아이야.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네가 나를 미워해도 돼, 나를 어떻게 벌해도 상관없어. 그런데 아이는... 아이는 죄가 없잖아. 부탁이야. 남겨 줘. 한 번만... 남겨 주면 안 돼?” 조민아는 손을 확 잡아챘다. 마치 더러운 물건을 만진 것처럼 눈빛 속의 혐오가 넘쳐흘렀다. “죄가 없다고?” 조민아가 비웃듯 웃었다. 그 웃음에는 서늘한 비애와 증오가 함께 섞여 있었다. “서윤성, 네 입에서 죄가 없다는 말이 나와? 이 아이 자체가 실수야. 네가 억지로 남긴... 죄악의 씨앗이라고.” 조민아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 “내가 이 아이를 보면 뭘 떠올리겠어? 네가 나를 속인 것, 네가 배신한 것, 내가 당한 모욕, 내가 견딘 고통... 전부 네 얼굴이랑 같이 따라올 텐데. 그런 걸 안고 내가 어떻게 살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아이를 낳겠어?” “민아야...”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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