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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날, 서윤성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한쪽에 커다란 캐리어 몇 개가 쌓여 있는 걸 본 서윤성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서윤성은 책을 정리하고 있던 조민아의 뒤로 다가가, 팔을 뻗어 조민아를 끌어안았다. “짐은 왜 싸는 거야?” 서윤성의 목소리에는 본인도 숨기지 못한 긴장이 살짝 섞여 있었다. 조민아는 몸이 굳었다. 조민아는 뒤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은 채 손에 잡힌 책을 계속 정리했다. 서윤성은 조민아를 돌려세워 정면으로 마주 보게 했다. “아직도 화났어? 한은별이 널 영안실에 가둔 건 잘못이지만, 너도 한은별을 얼음 호수에 차 넣었잖아. 한은별도 몸이 상해서 며칠을 앓았어. 이제 그만 넘어갈 수는 없겠니?” 서윤성이 말을 이었다. “오늘 네 생일이야. 군인 호텔에 파티 준비해 뒀어. 너 원래 시끌벅적한 거 좋아하잖아. 같이 가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조민아는 제대로 생일을 챙겨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서윤성이 나타난 뒤로야, 누군가가 조민아를 소중히 여긴다는 따뜻함을 다시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윤성이 뭘 준비하든, 조민아는 그저 피곤하고 지긋지긋했다. “안 갈 거야.” 조민아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무심하게 말했다. “이번엔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서윤성은 참고 또 참는 듯한 목소리로 조민아를 달랬다. “네 친구들도 많이 불렀어. 다들 벌써 도착했어. 민아야,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자. 응?” 서윤성은 달래는 척하면서도 반쯤 강제로 조민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조민아는 파티장으로 끌려가듯 따라갔다. 파티는 정말 성대했다. 꽃장식과 음악, 음식이 화려하게 깔려 있었고, 선물 상자들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서윤성은 인맥까지 써서, 조민아가 좋아하던 악단을 직접 불러 현장에서 연주까지 하게 했다. 딱 한 가지가 눈에 거슬렸다. 한은별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은별은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약한 모습이었지만, 한은별의 시선은 틈만 나면 조민아에게로 흘러왔다. 은근한 도발이 섞인 눈빛이었다. 조민아는 한은별을 상대할 마음조차 없었다. 대신 조민아의 친구 몇 명이 다가와 낮게 불만을 쏟아냈다. “민아야, 저 여자가 한은별 맞지? 서윤성이 진짜로 좋아한다는 그 여자야?” “보면 볼수록 별거 없어 보이는데. 어디가 너보다 낫다는 거야?” 다른 친구가 이를 갈며 덧붙였다. “서윤성은 진짜 눈이 멀었네. 이렇게 예쁜 널 두고, 저런 여자를 좋아하다니...” 조민아는 그 말들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조민아가 아무리 더 나아도, 서윤성의 마음속에서 결국 한은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곧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소원을 비는 순서가 되었다. 커다란 3단 생일 케이크가 들어왔고, 위에는 정교한 초들이 꽂혀 있었다. 사람들의 재촉 섞인 함성 속에서 조민아는 눈을 감고 마지못해 소원을 하나 빌었다. 조민아가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쾅!”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졌다. 샴페인 타워가 누군가에게 부딪혀 와르르 무너져 내린 거였다. 조민아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한은별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조민아의 친구들이 얼굴이 벌게진 채 한은별을 둘러싸고 있었다. 조민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려던 찰나, 서윤성이 조민아보다 먼저 뛰어들었다. 서윤성은 한은별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워 자기 뒤로 감췄다. 그리고 낮고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한은별은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울음을 참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저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내가 조민아의 생일 선물을 훔쳤다고 했어. 그래서 내 몸을 수색하겠다고...” 한은별은 손끝까지 떨며 말을 이었다. “내가 싫다고 했더니 억지로... 그러다 내 가방에서 진짜 물건이 나왔어. 그런데 난 정말 가져간 적이 없어! 나도 왜 제 가방에 그게 있는지 모르겠어...” 한은별은 숨을 들이켜며 억울함을 토했다. “그 뒤로는 나를 막 모욕하고, 밀치고... 그래서 샴페인 타워까지 쓰러지고...” 그때 조민아의 친구가 분노에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맞받아쳤다. “거짓말하지 마! 우리는 네가 직접 자기 가방에 넣는 걸 봤어! 그게 떨어져서 따져 묻기만 했지, 누가 수색을 했다고 해? 말도 몇 마디 안 했는데, 네가 갑자기 샴페인 타워로 몸을 던졌잖아. 혼자 연기한 거라고!” “그만해.” 서윤성이 차갑게 끊어냈다. 서윤성이 날 선 눈빛으로 친구들을 바라봤다. “은별에게 사과해.” “뭐라고요?”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훔친 건 저쪽인데, 우리가 사과하라고요?” 서윤성은 단호하게 못 박았다. “나는 은별이를 믿어.” 조민아의 분노가 순간적으로 치솟았다. 조민아는 곧장 앞으로 나서서 친구들을 자기 뒤로 감싸듯 세웠다. 조민아는 서윤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내 친구들의 말을 믿어. 내 친구들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몰아붙일 리 없어. 절대 사과는 못 해.” 그러자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은 서윤성은 한동안 조민아를 바라보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은별은 더 좋은 보석도 많이 가지고 있어. 굳이 이런 걸 훔칠 이유가 없어.” 그 말이 조민아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그 말은 서윤성이 한은별에게 얼마나 많은 값비싼 것들을 안겨 줬는지,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조민아에게 대놓고 들이밀고 있었다. 그래서 서윤성은 한은별이 절대 훔치지 않았다고, 아무 조건 없이 믿는 거였다. 조민아는 한은별을 바라봤다. 그 순간, 한은별의 눈에 스치듯 지나간 득의만만한 표정이 조민아의 시야에 박혔다. 조민아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은별은 꼭 훔치려던 게 아니었다. 한은별은 이런 판을 만들고 싶었다. 조민아와 친구들이 한쪽에 서고, 서윤성이 한은별 편에 서서, 둘이 정면으로 갈라서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사과해.” 서윤성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짜증이 묻어 있었다. “못 해.” 조민아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윤성은 완전히 인내심이 바닥난 표정이었다. 서윤성은 조민아를 보지도 않은 채 경호병들에게 명령했다. “이 사람들을 데려가. 질서 문란, 허위 모함으로 처리해.” 서윤성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한 사람당 곤장 스무 대씩 때려. 끝나면 각 가문 어른께 연락해. 굳이 부대에서 대신 딸을 가르쳐야 하는 건지 물어봐.” “서윤성, 너 지금 제정신이야?” 조민아가 분노와 충격에 소리쳤지만 서윤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윤성은 한은별을 가로로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조민아가 뒤에서 아무리 불러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파티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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