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문가영은 조용히 말을 건네며 망설이듯 진수빈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린 남자가 그녀를 덤덤하게 바라보더니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문가영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소 기가 죽은 듯 대꾸했다.
“일부러 저격했다고 말한 건 미안해요.”
“아무도 널 노리지 않아.”
진수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전에 말했듯이 네가 대단한 사람인 척 굴지 마. 아무도 너한테 시간 낭비하지 않으니까.”
문가영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또다시 그날 점심 그가 망설임 없이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꼭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그녀는 빤히 진수빈을 바라보며 불쑥 이렇게 물었다.
“나랑 만나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진수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몸에 걸친 흰 가운은 구겨진 곳 하나 없이 그라는 사람처럼 반듯했다.
아무런 논리도 상관도 없는 문가영의 질문에 진수빈은 대답하기 싫었다.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이 질문에 답하면 더 성가신 일들이 벌어질 거란 직감에 그의 덤덤한 말투에 싸늘함이 묻어났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시간 낭비야.”
멈칫한 문가영은 씁쓸함이 가슴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진수빈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일 때문에 성격이 괴팍한 걸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잘해주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문소운 역시 문가영이 진수빈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의 말을 가장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문가영이 두려워하는 것은 진수빈이 아니라, 그가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하는 것임을 모를 뿐.
일찌감치 진수빈이 아무리 차갑게 대해도 그녀만 조심하면 언젠가 차가운 마음이 녹아내릴 거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진수빈이 온몸을 가시로 무장해도 문가영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마찬가지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 고통을 느낄 것을 간과했다.
진수빈을 바라보는 그녀의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진 선생님.”
회의실에서 막 서류 더미를 손에 들고 나온 여민지의 담담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문가영에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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