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송하영이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작은 삼촌을 사랑하게 된 일이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열 살 되던 해, 송하영은 심도윤을 처음 만났다. 이 키 큰 남자는 부모를 잃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열다섯 살 되던 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그 날 심도윤은 가해자들을 무릎 꿇게 하여 그녀에게 사과하게 했다.
열여덟 살, 심도윤이 작전 실패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송하영은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간 일부를 그에게 기증했다.
그날, 송하영은 그에게 몰래 키스를 했지만 갑자기 깨어난 심도윤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달콤함은 없고 오직 심도윤의 놀라움과 끝없는 거리감만이 남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심도윤의 첫사랑이 위중한 상태에 빠졌는데 적합한 기증자는 오직 송하영뿐이었다.
결국 평소 늘 차갑기만 했던 심도윤은 직접 송하영을 찾아와 신장을 기증해준다면 어떤 요구든 들어주겠다고 사정했다.
송하영은 침묵으로 거절을 대신했고 임소연은 결국 수술대에서 숨지고 말았다.
심도윤은 한줄기 눈물도 허락하지 않은 채, 마른하늘처럼 무감각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임소연이 세상을 뜬 지 일주일이 되는 날, 심도윤은 송하영의 속마음이 가득 담긴 일기장을 세상에 공개해 버렸다.
결국 송하영은 평생 삼촌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부끄러운 비밀을 모두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송하영의 생일날, 심도윤은 그녀의 음료에 약을 타더니 사람을 시켜 그녀를 끔찍하게 모욕하게 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지켜보기만 하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를 만질 거라고 기대는 하지 마. 너무 더러우니까.”
마지막으로 심도윤은 차가운 물로 기절 직전의 송하영을 깨웠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송하영은 심도윤이 칼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는 칼을 휘둘러 내리 찌르며 얼음처럼 차갑게 말했다.
“이건 네가 소연에게 진 빚이야.”
다시 눈을 떴을 때, 송하영은 신장 기증을 요구받던 그 날로 돌아와 있었다.
“제발 부탁해... 이 신장은 너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소연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야. 네가 기증해 주기만 한다면 뭐든 들어줄게.”
송하영의 귀가에 심도윤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환생한 것이다!
전생에서 송하영은 바로 이날 심도윤을 거절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당시 송하영은 이미 심도윤 때문에 간을 잃은 상태라 신장까지 잃을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난 송하영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신장을 기증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기로 했다. 어차피 기증하지 않으면 죽을 몸이라면 차라리 11년간의 보살핌에 대한 보답으로 이렇게 갚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송하영은 손바닥을 꽉 쥐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기증할게요.”
심도윤의 못다 한 말들은 결국 그대로 목구멍에 걸려있었다.
옆에 있던 의사도 깜짝 놀라워하며 손하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손하영 씨, 잘 생각해 보세요. 일반적으로 장기를 한 번 기증한 분에게는 두 번째 기증을 권하지 않습니다. 수술 난이도가 커질 뿐만 아니라 사망 위험도 아주 큽니다.”
송하영은 이를 듣고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위험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지만 심도윤과 멀어지기 위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였다.
송하영이 직접 서명하는 것을 본 심도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송하영이 자신을 속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녀가 정말로 망설이지 않고 서명하는 모습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심도윤은 송하영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고마워. 그럼 나도 약속을 지킬게. 어떤 조건이든 말만 해. 내가 다 들어줄게.”
“조건은 하나에요. 심씨 가문과 관계를 끊는 거요. 이제 심씨 가문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심도윤은 이를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진심이야?”
그는 송하영이 이 기회에 자신과 결혼하라고 요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관계를 끊자고 하는 말에 의아해했다.
송하영은 심도윤을 똑바로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
심도윤은 송하영을 몇 초 동안 의심스럽게 바라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하영아, 그런 잔꾀는 집어치워. 네가 심씨 가문과 관계를 끊는다고 해서 내와 가능해질 거로 생각하지 마. 너와 나는 절대 안 돼. 내 마음속에는 오직 한 소연뿐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송하영은 그 말을 듣더니 손까지 떨렸다.
“알아요.”
전생에 당한 모욕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한데 심도윤이 임소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송하영은 이번 생에 심도윤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그저 심도윤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을 뿐 아무런 잔꾀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심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송하영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송하영이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말할 수 없었다.
심도윤이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병실 안에서 임소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도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병실로 뛰어 들어갔고 송하영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 들어갔다.
임소연은 기침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만해. 하영 씨를 괴롭히지 마. 하영 씨가 날 싫어하는 거 나도 알고 있어. 기증하지 않아도 이해해.”
임소연이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심도윤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소연아, 하영이가 기증해 주겠대! 우리 이제 살 수 있어.”
임소연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송하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하며 물었다.
“설마... 하영 씨와의 결혼을 대가로 나에게 기증해주는 거야?”
심도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소연은 손을 휘둘러 송하영의 뺨을 후려쳤다.
순간 붉은 손자국이 송하영의 얼굴에 선명하게 박혔고 임소연은 가슴을 움켜쥐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송하영 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도윤이는 당신의 작은 삼촌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추잡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심도윤! 만약 하영 씨와 결혼하는 대가로 나를 살려주는 거라면 난 차라리 지금 당장 죽는 게 더 나아!”
임소연의 격분된 감정에 심도윤은 송하영을 뒤로 한 채 임소연을 꼭 안아주었다.
“소연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평생 너만을 아내로 맞이할 거야. 걱정하지 마.”
송하영은 따끔거리는 뺨을 감싸며 스스로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떠나서면서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하영 씨가 이미 널 위해 간을 기증했는데 다시 나에게 신장까지 기증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송하영의 발걸음은 자기도 모르게 멈추었다. 심도윤의 답변에 대한 미약한 기대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지만 다음 순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소연아, 너도 알잖아. 난 너 외에는 누구의 생사에도 관심 없어. 네가 나아지기만 한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거든.”
병실을 나선 송하영은 한동안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은 후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이스트 프로젝트에 저도 참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