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지도교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리까지 외치며 기뻐했다.
“잘 생각했어. 하영아, 내가 더 자랑스럽네. 우리나라는 바로 너같이 헌신적인 학생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매우 힘들고 위치도 아주 외진 곳이야. 네 삼촌이 너를 그렇게 아끼는데 과연 동의할까?”
송하영은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삼촌의 허락은 필요 없어요. 이제 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전화를 끊은 송하영은 순간 모든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벽에 기대고 싶었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서자마자 심도윤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송하영이 깜짝 놀라 뒤로 보았는데 심도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누구랑 통화 중이었어? 어디에 참여하려고?”
송하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 교수님께서 학교 동아리에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셔서.”
“수술이 일주일 후로 잡혔어. 그동안 소연을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말을 마친 심도윤은 또다시 무엇인가 떠올린 듯 차가운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내 서재에서 이상한 편지 같은 건 이제 보기 싫다. 소연이가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송하영은 괴로운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전생에서 키스 사건 이후 송하영은 매주 심도윤에게 정성스럽게 연애편지를 썼다. 오로지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편지들은 예외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럼에도 송하영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정성껏 편지를 쓰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녀의 가득 담긴 사랑의 고백이 심도윤에게는 괴이하고 불쾌한 표현으로 비쳤다.
송하영이 말이 없자 심도윤은 운전기사에게 몇 마디 지시한 뒤 병실로 돌아갔다.
한 시간 후, 송하영은 병원의 대문 앞에 심도윤의 차가 도착해 있는 광경을 보았다. 임소연은 심도윤의 부축을 받으며 그의 차에 타고 있었다.
송하영은 이를 보더니 즉시 계단을 내려가 길가로 나섰다.
그러나 송하영이 문을 열려는 순간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송하영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바로 그때, 심도윤에게서 문자가 왔다.
[소연이가 결벽증이 있어서 낯선 사람의 냄새를 싫어해. 넌 따로 택시를 타고 와.]
송하영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송하영에게 운전기사가 친절하게 물었다.
“얼굴이 많이 부으셨는데 약국에 세워드릴까요?”
송하영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위 ‘가족'이라는 사람은 끝까지 한 마디의 걱정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신경 써준 사람은 낯선 운전기사였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한참 후 택시가 별장 앞에 도착했다. 송하영이 문을 열자 심도윤은 보이지 않고 임소연만이 옥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임소연이 만지고 있는 것은 송하영이 금고에 보관해둔 목걸이였다.
그것은 송하영의 부모님이 남기신 마지막 유산이었다. 그녀는 손으로 만지기조차 주저할 만큼 소중히 아꼈는데...
지금 임소연의 손 위에 나타난 것이다.
송하영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러 가며 임소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목걸이 돌려줘요. 소연 씨는 제 허락도 없이 제 방에 마음대로 들어간 거예요?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송하영의 말에 임소연의 얼굴이 이내 어두워졌지만 심도윤의 목소리가 먼저 2층에서 들려왔다.
“내가 허락했어. 소연은 언젠가 이 집의 여주인이 될 사람이야. 방을 드나드는 건 소연의 자유 아니야? 게다가 소연이가 네 방에서 잔다고 해도 네가 거절할 권리는 없어.”
심도윤은 송하영의 앞에 서서 냉정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송하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임소연은 심도윤이 내려오자 더욱 건방져졌다.
“그냥 허름한 옥이 달린 목걸이 아니에요? 원한다면 돌려줄게요.”
임소연은 말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송하영에게 건넸다.
송하영이 손을 뻗은 순간 목걸이는 땅에 떨어졌다.
“안 돼!”
그 순간 옥은 산산조각이 났다.
송하영의 마음도 함께 부서졌다. 그 목걸이는 그녀의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일한 유품이자 유일한 추억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옥 목걸이를 보며 송하영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앞에 서 있던 임소연을 밀치고 체면도 잊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송하영은 부서진 옥을 맞추려 애썼지만 부서진 사실을 바꿀 수 없었다.
임소연은 당황한 채로 서 있었다. 송하영의 반응이 이렇게 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심도윤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송하영이 이 정도로 감정에 휩싸인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하영이 놀란 모습을 보자 심도윤은 여전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달랬다.
“그만해. 소연이가 고의로 깨뜨린 건 아니잖아. 그 목걸이 얼마야? 내가 배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