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50화
망가진 황릉
예부 쪽에서 황태후의 시호를 성안황태후(聖安皇太后)로 추존하고 발인은 9월 초사흘로 정했다.
태상황이 아직 살아 계시므로 성안황태후의 관은 황릉 중 동제릉(東帝陵) 바깥 쪽 신도(神道, 선왕의 영혼이 다니는 길)에서 잠시 모셨다가 태상황이 붕어하시면 함께 묻힐 예정이다.
발인 당일, 명원제는 원래 직접 장지까지 가려고 했으나 태상황이 건곤전에서 넘어져서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무슨 변고라도 생길 까봐 직접 장지까지 가지 못했다.
경성은 온통 애곡하는 소리로 가득했는데, 발인하는 황실의 자손과 관원들이 천여명에 달해 베옷을 입고 굴건을 쓰고 상여를 따라 경성을 나갔다.
만장을 든 사람이 64명, 상여를 멘 사람도 64명으로 관은 아들 손자들에 둘러 쌓여 들려 나갔다. 위풍 당당한 대열에는 발인하는 사람 외에 마차가 용처럼 길게 늘어서 따라가는데 전부 부장품을 운송하는 마차다.
우문호와 친왕들은 망자의 환송을 책임지고 앞쪽 마차에는 32명의 고승들이 가는 내내 불경을 외웠다.
왕릉에 도착한 뒤 발인에 참석한 사람들은 돌아가고, 친왕과 장례를 집례하는 인원만 남아 길시를 기다려 왕릉 지하궁전 신도에 관을 들여놓을 예정이었다.
부장품부터 먼저 내려 보내기 위해 우문호와 안왕 등은 밖에서 관을 지켰다.
대략 향 하나 탈 정도를(30분) 기다리자 누군가 무덤에서 달려 나오는데 어찌나 빨리 뛰어왔는지 도착했을 때는 거의 우문호 앞을 기어서 고꾸라지다시피 떨리는 목소리로, “소인 급히 보고 드립니다.”
“말해라!” 우문호가 당황한 안색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소인이 다가가서 보고 드리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눈에 띄게 놀란 낯빛이다.
우문호가 허락하자 그 사람이 우문호의 귓가에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길, “서제릉(西帝陵) 묘실의 문이 아주 망가져서 안이 훼손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문호가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화를 참지 못하고, “뭐?”
“전하께서 직접 가서 보시지요!” 그 사람은 놀라서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문호가 돌아보니 장례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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