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8화
병여도 사건 이후
이틀 후 경조부에서 판결이 내려져, 보친왕은 독주를 받아 사사되었고 시체는 온전하게 보전되었다.
홍엽은 경성을 떠났고, 보친왕은 벌을 받았으며, 안왕은 감금되어 이 사건은 일견 수습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이건 두 나라가 대전하기 위한 폭풍 전야에 불과함을, 북당이 패배해서 귀퉁이가 찢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이 안정돼 보이는 솥은 아래로 물이 이미 부글부글 끓어올라 언제 넘쳐서 평온한 솥을 발칵 뒤집을지 알 수 없었다.
우문호는 아직 경조부 부윤으로 있지만 이미 내각에 들어갔고 관아의 많은 사안은 제왕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했다. 우문호는 종일 주재상, 냉정언 등과 회의를 하고 가끔 출궁해 주씨 집에 갔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원경릉도 의대 일로 바빠서 부부 두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는데, 우문호가 집에 돌아올 때 원경릉은 이미 잠들어 있고, 원경릉이 나갈 때 우문호는 막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이 유일하게 교류할 때가 우문호가 돌아와서 원경릉에게 뽀뽀할 때와 원경릉이 학교 가며 우문호에게 뽀뽀할 때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선비에 역간첩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선정하고 전체적인 배치를 하는데 상당히 치밀해야 하는 것이 행로에 약간의 착오만 있어도 공을 거둘 수 없음은 물론이고 간첩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북당과 대주의 무역은 맹렬한 기세로 진행되고 있다.
이리 나리는 대주로부터 수많은 주문을 받고 시장의 절반을 잠식해 본부도 수도권 직례에서 경성으로 옮겨, 전열을 가다듬고 자리를 잡았다.
천자의 사위로 이리 나리는 충분한 영향력이 있어, 경성 상인들의 신임을 순식간에 얻을 수 있었고 이리 나리 성격이 후해서 다들 그와 장사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리 나리와 공주가 결혼한지도 꽤 되었는데 공주의 배가 불러 오지 않는다고 암암리에 수근대는 사람도 있었다.
이 유언비어는 우문령을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원경릉이 가서 다독여 주었다. 이 시대는 혼인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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