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33화
홍엽의 반역
독고가 저지른 짓은 6국의 분노를 샀으나, 누구도 쉽게 전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목표가 자기가 아니므로 출병해서 군비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한 번 치르면 은자 천만 냥은 훅 나가는 데다 경제, 농경이 어려워 지는 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때론 국가의 존엄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 토론에서 대흥과 대염(大炎) 왕조는 출병해서 지원하며 이번 7국의 난국을 하루빨리 끝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숙나라 독고의 야심이 너무 커서 만약 제압하지 않으면 다시 전쟁이 일어날 화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당도 좋은 소식을 전해왔는데 마침내 무기가 제조되어 전차는 무성까지 운행해 다음 전투부터 참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포위전은 개전 4개월 만에 결국 돌파구를 찾았다.
숙나라는 이미 멸망 일보직전으로, 특히 정권을 빼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시작해 조정 중신들의 반발이 상당했고, 조정 대신의 과반수 이상은 전왕조인 성원제(聖元帝)의 원로 대신으로 국내에서도 독고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뜻밖에 이 성토 물결의 복판엔 홍엽 친왕이 있었다.
홍엽 친왕은 성원제의 자손을 황제로 옹립해야 한다는 쪽을 옹호하며 독고의 폐위를 주장했다.
대의를 위해 가족에게 단호하게 칼을 들이대는 모습은 숙나라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독고는 북당에서 데리고 돌아온 사생아가 마지막에 자신의 천하통일 꿈을 부수고, 심지어 산사태가 나듯 자신의 병력을 패배 시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들 거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독고는 격노했으나 전쟁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로 몸을 빼 홍엽과 대적할 수조차 없었다.
홍엽은 이때 신비하게 사라져 버렸는데 동시에 그 10만의 병력도 사라졌다.
원경릉은 이제 임신 4개월째가 되어 대략 우문호는 자신이 임신 6개월일 때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던 원경릉은 이날 무거운 배를 이끌고 황귀비에게 문안인사를 하기 위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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