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강나리는 심장이 요동치듯 뛰었다.
뭐라 말하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 눈앞으로 화살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의식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앞으로 나섰고 가슴에 화살이 꽂히는 순간, 밀실 안에 있던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아, 이렇게 이어져 있었던 거구나.’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종아리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강나리는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굳게 잠겨있던 문이 열리고 유재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송은 좀 했어?”
유재훈은 공기 속에 밴 피 냄새를 맡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마음속에 스친 연민을 억눌렀다.
강나리는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확실히 잘못했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재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유재훈, 잘못한 건 너야. 전생에서 널 구한 사람은 나라고. 내가 너 대신 화살을 맞았어.”
강나리의 말에 유재훈은 멍해졌지만 문 앞에 있던 송하나는 급히 안으로 뛰어왔다.
“선생님, 재훈이의 과거를 다 안다고 해서 그걸로 저를 공격하시면 안 되죠.”
그녀는 무고한 얼굴로 눈물을 훔치며 나가려는 듯 연기했다.
그러다 송하나는 발밑에 있는 돌 하나를 꾹 밟았는데 그건 기계가 작동되는 버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밀실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왔다.
“재훈 오빠, 살려줘!”
“유재훈, 어서 가서 장치를 꺼버려!”
강나리는 아픈 몸으로 힘겹게 화살을 피하며 소리를 질렀다.
사실 장치만 꺼지면 이 화살은 전부 멈춘다.
게다가 유재훈은 이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방법을 떠올리는 사이 남자는 단 한 번도 강나리를 보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며 송하나를 급히 안아 들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너무나도 차갑고 단호한 그 뒷모습은 강나리의 마지막 희망을 단번에 끊어냈다.
멍해진 강나리가 가만히 서 있던 찰나, 그녀의 어깨와 등으로 여러 발의 화살이 꽂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배를 바닥에 붙인 채 기어가 구석에 몸을 숨겼다.
어느새 땀과 눈물이 뒤섞여 상처에 흐르는 피 위로 떨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코끝에는 소독약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여 들어왔고 이내 귓가에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깼어?”
유재훈이 손을 뻗어 강나리의 체온을 재며 말했다.
“열없는 거 보면 괜찮네. 강나리, 다음부터는 거짓말하지 마. 하나는 황후가 맞아. 나는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거든.”
강나리는 진지한 그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이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침묵이 흐르는 병실 안,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일주일 후, 보기 드문 9개의 별이 일렬로 맞물리는 현상이 관측될 예정이며 많은 시민들이 천문대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송하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오다 이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유재훈의 손을 붙잡았다.
“재훈 오빠, 드라마에서 보면 다들 이럴 때 사라지잖아. 설마 오빠도 날 두고 가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 없어.”
유재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년 전에도 이런 일은 한 번 있었어. 그때도 난 멀쩡히 여기 있었잖아.”
그때, 강나리는 기도를 성공시켰지만 엄청난 반작용으로 반년 동안 몸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유재훈이 걱정할까 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강나리가 별장에서 요양하던 그 기간 동안, 유재훈은 세상을 뒤지며 송하나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유재훈,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잘못한 건 너야.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
그 후 사흘 동안, 강나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문득 한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황제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그거 있잖아요. 그에 대한 논문 전부 송하나가 가져갔어요.”
강나리가 쓴 논문들의 저자는 송하나가 되어있었고 심지어 다른 동료 교수 밑으로 옮겨갔다.
사실 이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모든 건 다 유재훈의 짓이라는 걸 말이다.
“그냥 줘.”
강나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손에 남은 논문은 아직 많았고 이제 유재훈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라져도 괜찮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화가 나 씩씩거리는 학생을 달랬다.
분해하는 학생을 달랬다.
다음 날, 무덤이 파손됐다는 소식과 영상이 퍼졌다.
그리고 강나리가 남학생을 상대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강 교수님 있잖아. 수업할 때도 엄청 까칠하대. 게다가 이유 없이 욕도 하고.]
[저 남자, 유재훈 같지 않아? 저렇게 가까운 사이면 아내밖에 없잖아.]
[문화재 파괴하는 사람이 어떻게 교사야? 저런 사람은 당장 해임해야지.]
온라인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흐릿한 여자의 뒷모습이 강나리라는 결론까지 내려졌다.
그녀는 자신을 모함하는 글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강나리는 이를 악문 채, 남아 있는 마지막 이성으로 글의 배후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송하나는 한발 앞서 그녀를 찾아왔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강나리의 손에 들린 서류에 꽂히더니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거 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