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심윤서의 얼굴빛이 순간 하얗게 질렸고 입을 열기도 전에 전우빈은 이미 큰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남은 반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했다.
“심윤서가 백설 공주를 연기한다고? 장난치지 마!”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역사상 가장 못생긴 백설 공주가 될 거야!”
“하지만 우리 각본 원래 풍자 동화 아니었어? 못생긴 백설 공주로 바꾸면 오히려 주제에 더 잘 맞지 않을까?”
여학생 몇 명이 흥에 겨워 심윤서의 저항을 아예 무시한 채 그녀를 제압하고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하연?”
심윤서가 고개를 들자 강하연이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하연의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반 친구들은 강하연을 반갑게 맞이했다.
“강하연, 돌아와서 다행이야. 네가 백설 공주역을 맡으면 되겠네.”
강하연은 심윤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백설 공주도 괜찮은데.”
다른 친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강하연이 USB를 반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반장, 무대극에 쓰는 영상을 네가 만든 거 맞지?”
당시 예산이 제한되어 백설 공주의 어머니 관련 장면은 AI 영상으로 대체된 상태였다.
강하연이 말을 이었다.
“여기 심윤서 어머니 사진이 들어 있어. 영상 속 백설 공주 어머니 얼굴을 전부 이 사진으로 바꾸면 역할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심윤서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강하연을 바라보았다.
“너한테 어떻게 우리 엄마 사진이 있지?”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스크린에 심윤서 어머니의 사진이 나타났고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다시 하얗게 질렸다.
이 사진은 심윤서가 어릴 때 어머니가 그녀를 안고 찍은 것이었고 오직 전우빈에게만 보여준 것이었다.
‘전우빈이 강하연에게 준 걸까?’
심윤서는 지난 몇 년간 전우빈에게만 어머니에 관해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이야기를 강하연과 공유한 것이었다.
심윤서의 눈가에 눈물이 맴돌았고 강하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강하연이 덧붙였다.
“잠깐 심윤서 어머니가 심윤서보다 훨씬 예쁘네. 백설 공주가 추한데 어머니가 너무 예쁘면 좀 그렇지 않아?”
심윤서는 화가 치밀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하연!”
강하연은 심윤서의 외침을 무시한 채 반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코는 돼지 코로 바꾸고 옷은 선정적인 걸로 바꿔. 이야기도 좀 고치자. 그녀 어머니는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야수들에게 끌려가 당한 거라고. 하하하.”
“강하연!”
심윤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달려들려 했지만 친구들에게 제압당해 오로지 소리만 지를 수 있었다.
“너 우리 엄마까지 모욕해?”
강하연은 그녀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비웃듯 웃음을 지으며 계속하여 반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반장은 강하연의 눈빛에 홀린 듯 모든 것을 따랐다.
순간 강하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이야? 전우빈?”
심윤서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은 듯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전우빈! 강하연이 우리 엄마 사진을 망치고 있어! 부탁이야, 막아 줘!”
심윤서의 목소리는 분명히 전화 너머로 들릴 만큼 컸다.
강하연이 전우빈에게 말했다.
“맞아. 나 심윤서 어머니 사진으로 영상 만들고 있어. 뭐라고?”
강하연의 시선이 가볍게 심윤서를 스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말은 심윤서한테도 똑같이 돼지 코를 그려주라고? 좋은 생각이야.”
순간 심윤서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렸다. 저항할 힘도 전우빈을 탓할 생각도 사라졌다.
‘전우빈이 허락한 거야?’
그들은 강하연의 지시에 따라 심윤서를 제압하고 돼지 코와 어릿광대 같은 눈을 그려 넣은 뒤 무대 뒤로 끌고 가려 했다.
끌려가기 전 강하연이 심윤서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난 이미 백설 공주 역할을 너한테 양보했어. 그러니까 우빈이는 내게서 빼앗으려 하지 마.”
강하연은 말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심윤서는 홀로 무대 뒤에 버려졌다. 그녀는 일어나려 했지만 다친 발목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버둥거리던 중 바닥에 떨어진 메이크업 리무버 티슈 한 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무대 위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순서는 미디어 광고학과 졸업생 여러분이 준비한 새 버전 [백설공주]입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심윤서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야기 줄거리대로라면 막이 열리면 백설 공주가 무대에 앉아 있어야 했고 대형 스크린에는 반장이 만든 영상이 재생되어야 했다.
강하연이 영상 속 어머니를 추하게 만든 이유는 심윤서라는 백설 공주가 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아름다운 백설 공주가 된다면 그들이 만든 모든 조롱은 헛것이 되어 버릴 터였다.
심윤서는 있는 힘을 다해 메이크업 리무버 티슈를 집어 들었다. 포장을 뜯는 순간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 손이 멈춰 버렸다.
4년 전 심윤서는 이 얼굴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 지금은 얼굴을 가렸지만 어머니의 명예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심윤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티슈를 뜯어내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
한편 전우빈이 관객석에서 강하연을 찾아냈다.
“강하연! 누가 병원에서 함부로 나오라 했어?”
전우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쉿!”
강하연은 검지로 전우빈의 입을 막으며 환하게 웃었다.
“전우빈, 너한테 선물 준비했어. 잘 봐.”
전우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앞에 앉은 미디어 광고학과 여학생들의 수다가 들려왔다.
“심윤서 빨리 나와야 하는데.”
“얼른 휴대전화를 켜서 역사상 가장 못생긴 백설 공주를 찍어야지.”
“하하, 이렇게 못생긴 백설 공주랑 엄마 영상이면 인터넷에서 난리 나겠네.”
전우빈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강하연을 바라보며 무언가 묻고 싶었지만 그 순간 음악이 울려 퍼지며 막이 열렸다.
웃음과 수다로 가득했던 관객석은 순식간에 고요해지며 탄성으로 바뀌었다.
“저거 누구야? 심윤서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