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송유서는 귓가가 웅웅 울리며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듯하였다.
이원은 분명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최윤영이 꾸며낸 연출이자 모함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그는 이를 밝혀내지도 공정하게 가려내지도 않은 채 도리어 피해자인 그녀에게 연극에 동조하라 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죄를 스스로 인정하게 하며 형식뿐인 벌을 감내하라 명하고 있었다.
오로지 최윤영이 마음에 응어리를 품어 병을 얻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막 그를 대신해 화살을 맞았고 독상도 아직 낫지 않았으며 산후조리조차 끝내지 못한 몸이었다.
거대한 부조리함과 날카로운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를 대신해 화살을 맞던 그 순간보다도 더 깊이 그녀를 짓눌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송유서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저하... 소첩은 아직 산후조리 중입니다. 아직 화살에 맞은 상처도 낫지 않아 이번만은... 인정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까?”
이원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눈에 남아 있는 희미한 기색을 바라보다가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지며 알 수 없는 짜증이 일었다.
그는 시선을 돌린 채 더욱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숙빈, 나를 곤란하게 하지 말거라. 그저 형식만 갖추는 것일 뿐이니 참된 중벌은 아니다. 이번만 넘기면... 이후에 마땅히 보상하겠다.”
보상. 그는 또다시 보상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뜻으로 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동궁전에서 이원의 말은 곧 하늘이었다. 그가 죄를 인정하라 하면 인정해야 했고 벌을 받으라 하면 받아야 했다.
송유서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그 얼굴에는 죽은 물처럼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첩, 알겠습니다.”
그녀의 순응을 확인하자 이원의 얼굴선이 다소 누그러졌다.
“들어가거라.”
두 사람은 앞뒤로 정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각 안에서는 최윤영이 비단 깔린 침상에 반쯤 기대어 있었고 이원의 뒤에 선 송유서를 보자마자 곧장 가련한 기색을 띠며 울음을 터뜨렸다.
“저하! 부디 소첩의 억울함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숙빈이... 생신 연회에서 춤을 추게 된 일을 이토록 원망하여 이처럼 음험한 술수로 소첩을 저주할 줄은 몰랐습니다! 도사님의 도력이 아니었다면... 소첩은 다시는 저하를 뵙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원은 급히 탑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들고 부드럽게 달랬다.
“세자빈, 흥분하지 말거라. 몸을 살펴야 한다. 일은 이미 가려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송유서를 바라보며 눈짓으로 말하라 재촉했다.
송유서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뜨고 최윤영을 향해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기복도 담겨 있지 않았다.
“주술의 물건은... 소첩이 한때 분별을 잃고 저지른 일입니다. 모든 허물은 소첩에게 있으니 저하께서 마땅히 벌을 내리시지요.”
최윤영의 얼굴에 잠시 계책이 이루어진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더욱 짙은 억울함과 분노로 덮였다.
“저하! 들으셨지요! 스스로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소첩의 목숨을 노린 짓입니다! 부디 엄히 다스려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소첩의 병은 끝내 낫지 않을 것입니다!”
이원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린 뒤 송유서를 향해 돌아섰다. 그 음성은 마치 사사로운 감정을 덜어낸 선고와도 같았다.
“숙빈 송씨는 사술을 행하여 주모를 저주하였으니 그 죄상이 가볍지 않다. 허나 아직 뉘우침이 있고 왕실의 자손을 낳은 공이 있으므로 사형은 면하게 한다. 오늘부터 사당으로 가 ‘법화경’을 백 번 베끼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도록 하라.”
음습하고 추운 사당에서 경문을 백 번 베끼는 일은 중상이 아직 낫지 않았고 산후 중인 그녀에게 이미 가혹한 벌이었다.
그러나 최윤영은 분명 만족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하, 고작 경문을 베끼는 것뿐입니까?”
그녀는 몸을 곧추세웠다.
“저하! 저 여인은 소첩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글 몇 줄로 끝내신단 말씀입니까? 이처럼 가벼운 벌로 어찌 다시는 못 할 짓이라 깨닫겠습니까?”
그녀는 이원의 팔을 움켜쥐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하, 혹시... 저 여인을 마음에 두신 것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이처럼 감싸시는 것입니까?”
이원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망령된 소리냐. 내 마음에는 오직 너 하나뿐이다. 어찌 편들었다는 말이 나오느냐.”
“그렇다면 증명해 보여주세요. 저 여인을 의금부로 보내 국법에 따라 다스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