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5화

다시 눈을 떴을 때, 권서아는 넓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낯설기만 했다. 온갖 의문이 가득 차오르던 그때, 그녀는 옆에서 곤히 잠든 김도균을 보았다. 남자의 옆모습은 여전히 다정하고 잘생겨서 권서아는 순간 이 모든 일이 그저 지독한 악몽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권서아는 손을 들어 김도균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손을 드는 동작만으로도 온몸의 수많은 상처가 당겨졌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이 순식간에 그녀를 피비린내 나는 현실로 끌어당겼다. 기척을 느낀 김도균은 번쩍 눈을 뜨더니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자기야...” 권서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김도균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어깨 위로 늘어져 있어야 할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정수리를 더듬었고 손가락 끝에 두피가 닿는 순간, 그 생소한 감촉에 온몸이 떨려왔다. 해초처럼 풍성하던 머리카락 대신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권서아는 눈물범벅이 된 채 고개를 돌려 김도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 머리카락, 어디 갔어요?” 권서아의 추궁하는 듯한 눈빛과 마주하자 김도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눈가에는 죄책감이 서렸다. 김도균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자기야, 머리카락에 강력 접착제가 너무 많이 묻어서 도저히 씻어낼 수가 없었어. 게다가 내 약혼녀가 네 머리카락을 보고 화를 많이 내기도 해서, 다 밀어버릴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미 가발을 맞춤 제작해 두라고 했으니까, 예전에 네 머릿결이랑 똑같이 만들어 줄게...”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권서아의 뺨을 감싸고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닦아낼수록 눈물은 더 거세게 쏟아졌다. “도균 씨, 내가 이렇게 된 걸 보니 만족해요? 이게 당신이 원하던 결과예요? 당신의 사랑은 상처만 줄 뿐이에요.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식덩어리인 사기꾼일 뿐이라고요!” 권서아는 횡설수설하며 울분을 터뜨렸고 커다란 눈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김도균은 그녀가 어떤 욕설을 퍼부어도 묵묵히 다 받아내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격한 몸부림에 권서아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거즈를 들고 오더니 상처를 다시 정성껏 감싸주었다. 내려앉은 앞머리가 그의 눈을 가려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손길만큼은 다정하고 지극 정성이었다. 연이은 타격에 권서아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던 감정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도균 씨, 난 당신의 내연녀 노릇 따위엔 관심 없어요. 헤어져요. 그게 당신과 나, 우리 둘 다를 위한 길이에요.” 김도균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고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절대 안 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내 곁을 떠나면, 바깥 남자들이 네 뼈마디 하나 남기지 않고 널 뜯어먹고 말 거야. 그냥 내 곁에 얌전히 있어. 그게 네 유일하고도 최선의 선택이니까.” 여전히 굴하지 않는 권서아의 눈빛과 마주한 김도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강제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자기야, 넌 영원히 내 거야. 절대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할 거야. 설령 쇠사슬을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권서아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권서아는 그제야 자신의 발목에 위치 추적기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김도균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도균 씨, 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범죄예요!” 그녀의 외침에도 김도균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매만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려는 것뿐인데, 그게 왜 범죄지?” 말을 마친 김도균이 권서아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던 찰나, 다급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화면에 뜬 ‘배수진’이라는 세 글자가 그의 눈에 서린 광기를 조금 가라앉혔다. “푹 쉬고 있어.” 김도균은 그저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 방을 나섰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권서아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황급히 침대 주변을 뒤지며 휴대폰을 찾았지만 휴대폰은 이미 그녀의 곁에 없었다. 권서아는 즉시 침대에서 내려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모든 창문은 빈틈없이 봉쇄되어 있었고 잠긴 문 외에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전혀 없었다. 무력감이 그녀의 마음을 끝없는 심연 속으로 끌어내렸다. 곧이어 그녀는 옆에 있던 스탠드를 집어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컵, 구급함, 장식품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이 그녀의 고통을 쏟아낼 희생양이 되었다. 한참을 미친 듯이 부수다가 기력이 다해 쓰러졌을 때, 갑자기 방 안에서 김도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이제 화 좀 풀렸어? 떠날 생각은 하지 마. 이 방에는 360도 사각지대 없는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네 일거수일투족을 내가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보러 올게.” 권서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서서히 평정심을 되찾으며 흐릿했던 눈동자는 점차 맑고 또렷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발악해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그녀는 차라리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김도균은 침대 곁에 앉아 눈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