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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출국을 하루 앞둔 날, 한서율은 오래된 절을 찾았다. 유산 이후, 그녀는 매일 밤 피로 물든 아기를 품에 안고 울부짖는 꿈을 꾸었다. 결국 스님에게 연락해, 천도제를 부탁했다. 그런데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의 넓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 “윤재헌이 사랑하는 여자가 불치병이라죠.” “네, 그 여자를 위해 산 아래부터 삼배 아홉 절로 여기까지 올랐다네요.” “마지막 구간이 절벽처럼 험해서, 굴러떨어질 뻔했다던데요.” 한서율은 윤재헌의 붕대가 감긴 팔에 시선을 멈췄다. 붕대 사이로 피가 아직 스며 나오고 있었다. 한서율은 그가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걸 알았다. 절에 발을 들인 적도, 집에 신불 하나 놓은 적도 없었다. 회사 행사에서 부적을 뽑았을 땐 비서에게 내던졌고 어머니 제사 이야기를 꺼내면 담배를 끄며 말했다. “죽은 사람은 그냥 죽은 거야.” 그런 윤재헌이 지금, 온몸으로 간절함을 드러내며 커다란 불상 앞에 이마를 붙이고 절을 올렸다. 한서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윤재헌은 신을 믿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껏 그가 그렇게까지 믿어야 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 절을 내려올 즈음,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산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한서율이 돌계단을 내려서려던 그때, 숲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누군가가 그녀의 입과 코를 거칠게 틀어막자,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의식이 꺼졌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요! 부상자는 절벽 아래에 있습니다!”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한서율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찬 바람과 함께 어둠 속에서 윤재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한서율. 난 네가 세린이를 저주한 게 단순한 화풀이인 줄 알았어. 그런데 직접 절벽 아래로 밀어버릴 줄은 몰랐네.” 그의 손이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곧 그녀의 등이 나무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 세린이는 운이 좋아 바위에 걸려 살아 있대.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같이 죽여버렸을 거야.” 숨이 막혀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한서율은 겨우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저... 아니에요...” “아직도 거짓말하는 거야?” 윤재헌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세린이와 넌 동시에 여기에 있었어. 그리고 지금 세린이는 절벽 아래 있지. 이게 우연이라고?” 그때, 오지훈이 헐떡이며 달려왔다. “대표님!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 말에 윤재헌은 그녀의 목을 놓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한서율은 바닥에 주저앉아 기침을 쏟아냈다. 그 시각, 한세린은 들것 위에서 윤재헌의 소매를 붙잡은 채 떨고 있었다. “재헌아... 나 무서워...” “괜찮아. 내가 곁에 있으니까,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할 거야.”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며 조심스레 구급차에 태웠다. 그리고 오지훈에게 짧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잠시 후, 오지훈이 돌아와 한서율의 팔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녀를 절벽 끝으로 밀어냈다. “꺄악!” 한서율의 몸이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위쪽에서 오지훈의 냉정한 목소리가 내려왔다. “대표님 말씀이... 이번 일은 사모님이 선을 넘으셨답니다. 그래서 세린 씨가 겪은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곳에 남겨진 건 한서율뿐이었다. 몸의 감각이 하나씩 꺼져 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절벽을 기어오르려 했지만 피투성이가 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 산 위는 신호가 잡히지 않았기에 더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한서율은 이를 악물고 피가 배어 나오는 손끝이 바위틈을 더듬었다.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그 동작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겨우 절벽 위로 몸을 끌어올렸다. 해는 저물어 있었고 산 아래 케이블카는 이미 멈춰 있었다. 한서율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산길을 내려왔다. 집에 닿았을 무렵,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상처를 정리한 뒤, 몸을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반쯤 잠이 든 순간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려 차가운 바닥 위로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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