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함부로 사람을 들이거나 내보내는 곳이 아니다
나는 매섭게 그의 뺨을 후려쳤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역시나 조준우는 사인하라는 내 말도 무시한 채 씩씩거리며 그대로 가버렸다.
어차피 나도 이혼에 대한 결심만 더욱 굳어진 상황이라 떠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은 이미 새벽을 달려가고 있었고 그래도 조준우가 오면 다시 나가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온밤 뜬 눈으로 그를 기다렸지만 끝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에 전화해서야 그가 출장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를 싸한 느낌에 재빨리 오연수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두 사람이 같이 간 것이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 티켓과 조준우가 업무를 보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멋쟁이 대표님과의 출장이라니, 기분이 너무 좋은걸?]
아래 댓글을 단 사람들도 전부 대학 동창들이었다.
오연수는 대학생 때부터 인기가 많았었고 조준우도 우리 학교의 킹카라 불렸다.
하여 18학번 선배와 20학번 후배가 같은 회사의 동료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도파민이 들끓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후배님, 설마 이대로 우리 학교 킹카랑 사귀는 걸까요?]
[킹카면 당연히 퀸카랑 어울리는 게 맞지.]
많은 사람들의 농담 어린 축복속에서 나와 같은 반 친구들도 댓글을 달았다.
[저기 후배님, 그 선배는 심현주 남자이니까 넘보지 말아주실래요?]
역시나 내가 조준우의 아내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어 보였다.
이때, 조준우의 등장에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댓글을 달 수 없었다.
[나 조준우는 그 누구의 남자도 아닙니다.]
너무 뻔히 보이는 행동이다.
이토록 나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길 바라면서 왜 이혼은 안 해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여 나도 댓글 하나를 달았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어차피 저희 곧 이혼할 예정이라 그냥 후배님께 넘겨줄게요.]
잠깐 눈을 붙였다가 나는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조준우의 어머니인 강경자가 분노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심현주, 너 그게 무슨 뜻이야?”
강경자는 내가 단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며 물었다.
나는 솔직히 그녀가 무슨 의도로 저런 물음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고 누구보다도 우리 두 사람이 이혼하기를 바랐던 사람인데 말이다.
조씨 가문을 도와주면서 심씨 가문이 점점 못 해져가는 모습을 보고도 미안해하거나 고맙다고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강경자는 내가 조준우와 수준이 많이 차이 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여러 번 내 앞에서 대놓고 어느 집 가문의 올해 영업 수입이 얼마라고 말한 뒤, 꼭 이 말도 덧붙였다.
“심씨 가문은 지금 어떤 상황이야?”
‘심씨 가문이 어떤지는 그쪽이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그해에 조준우와 결혼하면서 심씨 가문에서는 거의 절반의 재산을 조씨 가문에 넘겨줬다. 그 뒤로 조씨 가문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도 나머지 재산마저 아낌없이 다 내놓았다.
하여 지금의 심씨 가문은 그저 숨만 겨우 붙어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번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면 강경자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말하곤 한다.
“맞다, 심씨 가문은 이제 사회에서 거의 도태된 거나 마찬가지였지?”
“현주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애초에 네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심씨 가문이 그렇게까지 가라앉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게, 조준우한테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은 그저 내가 조준우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아무 조건 없이 지지해 줬다.
“난 우리 딸의 안목을 믿어. 분명 괜찮은 사람일 거야.”
그러나 심씨 가문의 전 재산을 넘겨줘도 나는 조준우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하여 나는 내 인생이 거의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현주야, 왜 대답이 없어?”
“이미 다 보셨으면서 뭐가 더 궁금하세요?”
“그리고 준우 씨 댓글도 보셨잖아요? 누구의 남자도 아니라고 해서 제가 맞장구쳐줬는데 뭐가 문제 되나요?”
“누구보다도 저희 두 사람이 이혼하길 바라셨잖아요?”
이미 이혼하기로 결심한 마당에 더 이상 강경자를 깍듯하게 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나의 이런 당돌한 태도를 처음 마주하는 상황이라 처음에는 조금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본심을 드러냈다.
“현주야, 네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너희 심씨 가문이 이 바닥에서 먹힌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뭐 어떡하실 건가요?”
“너...”
순간 강경자는 말문이 막혀 죽일 듯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
“혹시 더 할 얘기가 남았을까요?”
“좋아, 네가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그렇다면 우리 준우한테도 더 이상 너를 봐줄 필요가 없다고 알려줘야겠다.”
강경자는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떠났고 그제야 집안이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준우가 오기 전에 나는 짐을 성남의 빌라로 옮겨놨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진작에 내가 돌아올 걸 예상이라도 했는지 내 모습을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딸, 괜찮아?”
“당연하지. 왜?”
역시나 엄마 눈은 속이지 못했는지 단번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되묻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어버버거리며 말도 잘하지 못했다.
“아니, 난 그저...”
“됐어. 내가 말할게.”
옆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던 아빠가 더는 못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물었다.
“준우랑 이혼하겠다고?”
“그러면 안 되나요?”
순간 나는 이상하게 긴장되었다.
사실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필경 조준우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이혼한다고 통보하면 누구든지 황당할 것이다.
“안되긴, 당연히 되지. 이미 그렇게 결정한 거야?”
아빠가 갑자기 흥분해서 허벅지까지 두드리며 말하는 모습에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건 분명 우리 두 사람이 헤어지기를 바랐다는 건데?’
그러다가 다시 엄마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를 소파에 앉힌 뒤 다시 물었다.
“딸, 진짜로 마음먹은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나를 꽉 안아줬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우리가 헤어지기를 누구보다도 바라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모든 재산을 넘겨준 게 아니라 여지를 많이 남겨뒀었다.
그 얘기를 들은 순간 나는 자기도 모르게 울다가 웃음이 나왔다.
역시 잔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괜히 내 하찮은 사랑 때문에 심씨 가문 전체가 망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는데 그 금액은 심씨 가문으로서는 겨우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순간 나는 두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마구 피어올라 빠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때, 집사가 갑자기 헐레벌떡 뛰어오며 다급히 알렸다.
“어르신, 밖에 조씨 가문의 사모님이랑 사위분이 오셨습니다.”
그 말에 내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편히 쉬기는 다 틀린 것 같아 마중 나가려는데 그들은 이미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강경자는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턱을 한껏 치켜들고 말했다.
“다들 왜 이렇게 굼떠요? 마중도 안 나오고.”
말을 마치자마자 들고 있던 핸드백을 옆에 있던 도우미에게 던졌고 조준우는 그저 어두운 얼굴로 그녀의 옆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부모님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경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혼하려고 이미 결심했으면 이제부터 계산기를 잘 두드려봐야겠죠? 우리 조씨 가문은 함부로 사람을 들이거나 내보내는 곳이 아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