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서나연은 문 앞에 서 있는 유재민을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길을 터주지도 않았고 먼저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유재민은 몇 초간 가만히 서 있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채유진이 한 말... 난 거절했어.”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네가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 거야.”
서나연은 멍하니 유재민의 말을 들어줬다.
그는 지금 자기가 채유진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굳이 찾아와 설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곧, 서나연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뭐라고 답했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어.”
유재민은 그녀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일 없으면 난 이만 쉬러 들어갈게.”
서나연이 문을 닫으려 하자 유재민은 손으로 닫히는 문을 가로막았다.
“너 요즘 많이 이상하네.”
그녀는 시선을 피했고 더는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은 채 문을 그대로 닫아버렸다.
쿵!
이내 차가운 문에 등을 기댄 서나연은 아주 옅은 숨을 내뱉었다.
마치 녹슨 못이 살갗을 긁어 난 상처, 그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 같은 느낌이었다.
유재민이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방금 전 그는 직접 찾아와 굳이 해명을 했다.
과거엔 서나연이 울고, 웃으며 불안해해도 유재민은 보지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채유진의 고백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던 그가 서나연에게는 괜히 오해하지 말라며 설명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하면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라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가 서나연을 현실로 이끌었다.
“나연아, 공지 봤어? 그 신형 소재 프로젝트 있잖아! 그거 논문 확정됐어! 너랑 유재민 씨가 한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채유진 씨 이름으로 돼 있어?”
그 말에 서나연은 숨이 턱 막혔다.
“네?”
“시스템 들어가 봐! 떡하니 채유진 씨 이름이 쓰여 있잖아. 유재민 씨 이름도 없어! 아니, 그 프로젝트 애초에 네가 제일 오래 붙잡고 한 거 아니야? 데이터도 네가 밤새 돌렸잖아!”
서나연은 바로 노트북을 켰다.
곧, 그녀의 시야에 내부 시스템 공지에 방금 올라온 문구가 들어왔다.
[채유진, 논문 <자료전선>에 게재 확정.]
<자료전선>, 이 분야 최상위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목은 지난 몇 달 동안 그녀가 유재민과 함께 매달리며 진행한 바로 그 프로젝트였다.
아이디어도, 핵심 데이터도, 실험도 전부 서나연이 한 프로젝트.
이건 그녀가 누구보다 오랫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매달려온 연구였다.
그런데 지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람의 이름에는 채유진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 유재민의 이름조차 없었다.
마치 이 연구를 채유진이 혼자 완성한 것처럼.
서나연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유재민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내가 유진이 고백을 거절했잖아. 그래서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린 것 같아. 계속 저 상태면 다음 평가도 영향을...”
서나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위로하려고 우리 연구를 통째로 넘긴 거야? 내 동의는? 내가 한 일은? 넌 나한테 한마디라도 물어봤어?”
유재민은 여전히 차분한 톤으로 대답했다.
“데이터는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유진이도 구상안은 정리했으니까 문제없잖아. 이 연구는 연구원 소속이야. 그러니까 이런 권한은 내가 판단하는 게 맞아. 걱정하지 마. 네 기여도는 나중에 반영할 거야.”
서나연은 숨이 턱 막혔고 손이 덜덜 떨렸다.
분노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나중에? 언제? 또 전처럼 감사 말에 내 이름 조그맣게 적어줄 거야? 유재민, 너한테 나는 뭐야? 명분도 필요 없고 결과만 뽑아서 남한테 주면 되는 소모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