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그럼 넌 나한테 잘해주기라도 했어?”
오수아가 되물었다.
심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당연하지. 누나는 내가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이잖아.”
예전엔 그 말이 그렇게 달콤했는데, 지금은 듣기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괜한 오해하지 마.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오늘은 그냥 쉬고 싶어. 돌아가.”
오수아가 다시 그를 돌려보내자 심도윤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누나, 오늘 밤 하 대표님이랑 미팅이 있어. 누나도 알잖아, 그 사람 얼마나 까다로운지. 누나가 안 가면 이번 계약은 물 건너가.”
하 대표.
부동산 업계에서 유명한 술꾼이자 여자 밝히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예전에도 그의 술자리에서 오수아는 몇 번이나 불쾌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도 심도윤은 그녀가 몸이 아프다고 말한 걸 무시하고 여전히 접대를 부탁했다.
가슴이 답답하게 저려왔다.
“오늘은 정말 피곤해. 그리고 나, 술은 이제 그만 마시고 싶어.”
그의 눈에 순간 놀람이 스쳤다.
오수아가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한 건 처음이었다.
심도윤은 감정을 눌러 담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누나. 내가 누나 몸 생각 못 했네. 근데 이번 계약이... 누나 고향 근처 부지 개발이래. 하 대표가 그쪽 묘역을 다 밀어버리고 돼지농장으로 바꿀 거라더라. 이번에 우리가 사업 따내면, 적어도 그곳만은 지킬 수 있어.”
그 말에 오수아는 잠시 굳었다.
그 땅엔 어머니의 묘가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심도윤의 말에 진심이 섞여 있는 듯 보였다.
“누나, 그럼 쉬어. 내가 대신 하 대표님 만나서 이야기해볼게.”
“아니, 나도 갈게. 삼십 분만 줘.”
오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을 고쳤다.
그렇게 반 시간 뒤,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녀가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거실엔 윤지유가 있었다. 파티라도 가는 듯 화려한 메이크업에 드레스 차림이었다.
심도윤이 급히 말했다.
“누나, 지유가 내 비서잖아. 이런 자리에 얼굴 한번 비춰보는 것도 배움이 되니까 데려가려 해.”
윤지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수아 언니, 앞으로는 내가 도윤이 도와줄게요. 이제 언니는 이런 자리에 안 가셔도 돼요.”
오수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은 감정 싸움을 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오늘의 거래만이 중요했다.
루체 프라이빗 라운지.
조용한 조명 아래, 하 대표가 이미 술잔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지유가 하 대표 옆자리에 앉으려 하자 심도윤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낮게 말했다.
“여긴 네가 앉을 곳이 아니야.”
그는 몸을 옆으로 비켜 오수아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 자리는 수아 누나 자리야.”
오수아가 하 대표 옆에 앉았다.
하 대표가 비열하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역시 심 대표는 수완이 좋아. 내가 듣기론 오수아 씨 요즘 집에서 요양 중이라던데, 오늘은 또 이렇게 나와줬네.”
심도윤의 얼굴에는 억지 미소가 걸렸다.
“과찬이십니다. 누나가 오늘 대표님 오신다길래 일부러 나왔어요.”
하 대표의 눈빛이 오수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럼 기분 좋게 한잔해야지. 오수아 씨, 나랑 건배할래요?”
오수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심도윤이 먼저 말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그는 직접 병을 따서 하 대표 앞에 잔을 채웠다.
“오늘은 대표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달릴 겁니다.”
그가 작게 속삭였다.
“누나, 그 땅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오늘에 달렸어. 제발 실수하지 마.”
오수아의 손이 잠시 멈췄다.
입꼬리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예전엔 그가 이런 자리에서 그녀 대신 마시며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말하곤 했다.
“누나, 미안해. 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런 꼴 보게 해서.”
하지만 지금 그는 그녀를 다시 접대석에 앉혔고 그 모든 걸 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