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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는 구시헌의 평생의 라이벌이자 서울에서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는 배씨 가문의 실권자로 이름은 배경택이었다. 5년 전, 그는 염미정에게 첫눈에 반했고 강렬하게 구애했다. 단지 염미정의 한 번의 미소를 보기 위해 빅토리아항에 무려 99번이나 폭죽을 터뜨렸고 그녀에게 보낸 보석과 옷들은 산처럼 쌓였다. 하지만 그때 이미 염미정의 마음에는 구시헌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배경택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구시헌을 자극하고 괴롭히기 위해 자신을 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정성을 보여도 염미정은 제대로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그러나 배경택은 포기하지 않았다. “구시헌은 네게 어울리는 남편이 아니야. 언젠가 너를 다치게 할 거고.” 그는 그렇게 경고했지만 염미정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결국 구시헌과 약혼했다. 그날 배경택은 완전히 마음이 꺾였다. “언젠가 네가 후회되거나 구시헌이 너에게 상처를 준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나는 영원히 너를 기다릴 거야.” 그 말을 남기고 배경택은 그날 밤 바로 해외로 떠났다. 5년이 지난 지금. 배경택이 그 약속을 기억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직접 음성 통화를 걸어왔다. 낮고 허스키한 배경택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연히 약속은 유효하지. 한 달 시간을 줄게. 그때 내가 귀국하면 바로 너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거야.” 염미정은 잠시 망설였다. “말해야 할 게 있어요. 제가 예전에... 구시헌의 아이를 가진 적이 있는데 괜찮나요?” 그는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네 과거는 신경 안 써. 나는 그저 네가 흔들림 없이 나와 결혼하기만 하면 돼.” “네.” 염미정이 낮게 대답한 순간, 방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미정아, 누구랑 통화해?” 바로 전화를 끊으며 염미정은 대답했다. “친구야.” 구시헌은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성격으로 염미정과 배경택의 결혼 얘기를 알게 되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게 그에게는 알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래.” 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 앞으로 걸어오더니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일부러 비서를 보내서 경매에서 낙찰받은 거야. 내가 해줄까?” 병 주고 약 주기. 그가 항상 써온 방식이었다. 예전의 염미정이라면 구시헌을 사랑했으니 그의 이런 행동에 금방 마음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염미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하며 표정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거기 둬. 나중에 해볼게.” 표정이 금세 굳으며 구시헌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미주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우린 곧 결혼할 거니까...” “화 안 났어.” 염미정이 먼저 말을 잘랐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그를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그에게 화낼 마음도 사라졌다. 그녀의 창백하고 피곤한 얼굴을 보며 구시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엄마가 또 벌줬어?” 염미정은 비웃듯 말했다. “네가 스캔들을 만들어 올 때마다 너희 엄마가 언제 벌주지 않은 적이 있었어?” 김선아는 친아들이 귀해서 나무라지 못했고 대신 염미정에게 모든 화풀이를 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엄마가 다시 너를 괴롭히면 바로 나한테 전화하라고.” 염미정은 조용히 웃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말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구시헌이 알게 되면 김선아는 더 큰 벌을 내릴 뿐이었다. 게다가 한 달 후면 염미정은 구시헌을 영원히 떠난다. 그러면 김선아가 그녀를 괴롭힐 기회도 없었다. 구시헌이 이불을 들추자 염미정의 무릎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즉시 도우미를 불러 소독약을 가져오게 하고 직접 상처를 닦아냈다. 그 눈빛은 마치 진심처럼 보였다. 염미정은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입술을 악물었다. “앞으로 우리 엄마 말은 무시해. 문제 생기면 내가 다 해결할게.” 예전의 염미정이라면 지금쯤 감동해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모든 말이 너무나 우스웠다. 그가 정말 믿을 만한 남자였다면 김선아가 그녀를 그렇게 짓밟는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녀가 눈이 멀어 개와 사람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때 구시헌의 전화가 울렸고 발신자는 김선아였다. “시헌아,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그런 한심한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마! 아니면 네 아빠가 어떻게 마음 놓고 회사를 너한테 맡기겠니? 그리고 염미정과 곧 결혼할텐데 그 애한테 전해, 얼른 손주나 안겨달라고. 5년이나 됐는데 도대체 임신 소식은 왜 이렇게 없는 거야?” 그 뒤로도 뭐라 뭐라 말했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염미정의 얼굴은 잿빛처럼 변했고 몸이 작게 떨렸다.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구시헌이 어둡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걸. 구시헌은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었다. “염미정.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심장이 철렁하며 염미정은 순간 멈칫했다. ‘혹시 임신 했던 일을 말하는 걸까?’ 그는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염미정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모든 걸 털어놓을 각오로 입을 열려던 순간, 구시헌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슬쩍 보고는 표정이 변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염미정의 상처 소독은 잊은 듯 구시헌은 서둘러 말하며 방을 나섰다. 말하지 않아도 염미주가 부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한 시간 후, 염미정에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근사한 옆모습을 한 채 스포츠카를 몰고 있는 구시헌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자리 조수석에는 염미주가 앉아 있었다. [언니, 이제는 포기해. 시헌 오빠는 애초에 언니를 사랑한 적이 없어.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바로 달려오잖아?] 염미정은 숨이 턱 막혔다. 구시헌은 예전에 남자의 조수석은 아내만 앉는 자리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지금은 그저 조롱일 뿐이었다. 그 순간, 염미정은 임신에 대해 고백할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구시헌은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굳이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는 이제 구시헌이 필요 없어. 그렇게 좋으면 너한테 줄게.] 하룻밤 내내 무릎 꿇었던 탓에 염미정은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깼다. 구시헌과 염미주가 손을 꼭 잡은 채 들어왔다. 완벽하게 화장을 한 얼굴로 염미주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언니, 또 보네?”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염미정이 말했다.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나가.” “내가 데리고 온 거야.” 구시헌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연극은 제대로 해야지. 앞으로 한 달 동안 미주는 여기서 지낼 거야. 그 한민준이 포기할 때까지.” 그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일어나서 방 정리해. 안방은 미주가 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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