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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며칠 동안, 염미주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전처럼 온갖 트집을 잡지도 않았고 염미정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염미정은 직감적으로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라는 걸 느꼈다. 결혼식 하루 전, 마침 염미주의 생일이었다. 구시헌은 반달 전부터 성대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했고 그의 지시대로 생일 파티는 성대하게 차려졌다. 파티 장소는 해성 그룹 소유의 최고급 호텔로 현장은 빛이 번쩍이고 꽃이 만발했으며 심지어 5년 전 그들의 약혼식보다 더 화려했다. 연회장은 온갖 명문가의 인사들로 가득했고 샴페인 잔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넘실거렸다. 그 중심에 구시헌과 그의 팔을 끼고 나타난 염미주가 있었다. 둘은 단번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니, 구시헌의 약혼녀는 염미정 아니었어? 왜 저 여자랑 저렇게 다정해?” “글쎄, 설마 벌써 파혼한 거야?” “아니야, 나 청첩장 받았는데? 결혼식이 내일이야.” 구석에 앉아 있던 염미정은 무표정으로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올 생각이 없었지만 구시헌이 억지로 끌고 왔다. 그는 머리가 잘못된 건지 굳이 염미주의 생일 파티에 오라고 고집을 부렸다. 염미정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다면 일부러 질투하게 만들려는 건가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시헌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제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이면 그녀는 결혼한다. 신랑은 구시헌이 아니다. 과분하게 준수한 배경택의 얼굴이 떠오르자 염미정의 심장박동이 절로 빨라졌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배경택이 보낸 카톡이었다. [내일이 바로 우리 결혼식이야. 후회돼?] [아니요.] [그럼 다행이네. 하지만 네가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 너를 데리러 갈 거야. 나 바람 맞히지마.] 염미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숙여 답장을 보냈다. [네, 내일 봐요.] 바로 그때, 구시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랑 메시지 하는데 그렇게 즐거워?” 염미정은 깜짝 놀라 급히 화면을 꺼버렸다. “친구.” 구시헌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염미정은 즉시 휴대폰을 핸드백 안에 던져 넣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구시헌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이거 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 파티를 망치고 싶지 않다면.” 구시헌은 비웃었다. “그걸 협박이라고 하는 거야? 염미정, 네가 이럴수록 대체 누구랑 얘기하고 있었던 건지 더 알고 싶어지는데? 휴대폰 줘. 억지 부리게 만들지 말고.” 순간, 염미정은 재빨리 그의 발등 위로 힐을 힘껏 내려찍었다. 구시헌은 본능적으로 손을 놓았고 염미정은 빠르게 몸을 빼 달아났다. 회장 밖으로 나와 계단 앞에 이르렀을 때 하필 염미주와 마주쳤다. 염미정은 즉시 멈춰 서며 몸을 약간 틀었다. 혹시라도 염미주가 도발할까 싶어서였다. “언니.” 염미주는 입꼬리를 기묘하게 올렸다. “내가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해? 왜 그렇게 나를 피하는데?” 귀찮다는 듯 염미정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염미주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그녀는 성큼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일은 언니랑 시헌 오빠의 결혼식이잖아. 근데 나는 포기하기 싫어. 그래서... 미안해, 언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염미정의 손을 움켜잡았다. 염미정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냈지만 바로 다음 순간 염미주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에 그녀의 새하얀 드레스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염미정의 심장은 멎은 듯 멈춰 섰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흐느끼듯 염미주는 구시헌의 이름을 불러댔고 몇 초 후 구시헌을 비롯한 손님들이 몰려왔다. 상황을 본 구시헌은 즉시 염미주를 안아 올렸다. “시헌 오빠, 언니 잘못 아니에요. 제가 실수로 넘어졌어요. 내일 언니 결혼식에 저는 못 갈 것 같아요. 미리 신혼 축하해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염미주는 기절했다. “미주야!” 구시헌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눈으로 염미정을 노려보았다. “내가 무슨 일이 생겨도 너와 결혼 할 거라고 생각했어? 염미정, 만약 미주 뱃속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도 그 아이와 같이 묻힐 줄 알아!” 그는 더는 그녀에게 어떠한 설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염미주를 품에 안은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염미정도 병원으로 따라가려 했지만 핸드백 속 휴대폰이 계속 진동했다. 사설 탐정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염미정 씨, 조사해달라고 하신 건 확인했습니다! 동생분의 산전 검사 보고서는 위조한 겁니다. 애초에 임신한 적이 없어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염미주는 임신을 꾸며낸 것이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염미정에게 누명을 씌울 기회를 노렸을 테고 결국 오늘이 그 순간이었다. 병원. 수술실 불이 꺼지고 의사가 나와 구시헌에게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차갑고도 유감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구시헌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지며 그제야 현실을 이해한 듯했다. 울먹이며 염미주가 말했다. “언니한테 오빠와 언니 사이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왜 우리 아이를 이렇게...” 구시헌의 눈빛에는 차디찬 서리가 내려앉았다. “염미정이 내 아이를 죽였어. 절대 용서 안 해.” 염미주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내일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이 지경인데 염미정이 나와 결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당장 두 가문에 연락해서 결혼식을 취소할 거야.” 재빨리 그를 붙잡으며 염미주가 말했다. “시헌 오빠, 이제 와서 파혼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차라리 내일 결혼식장에서 언니의 악행을 직접 폭로해요. 그럼 오빠가 파혼한 게 아니라 언니가 자초한 거잖아요. 언니가 비록 제 친언니지만 저도 언니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시헌 오빠, 없어진 우리 아이를 봐서 저를 위해 복수해 줄 수 있어요?” 아이란 단어가 나오자 구시헌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할게.” 한편, 별장. 염미정은 자신이 모은 모든 증거를 구시헌의 이메일로 예약 전송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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