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윤소율은 깨어났을 때 이미 병원이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기남준은 불길 속에서 그녀가 이미 죽은 두 아이를 낳았고 그 여자는 윤소율을 구하려다가 불길에 휩싸여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고 말했다.
서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 여자를 윤소율로 착각하고 장례식을 치렀다.
그렇게 이름을 감추고 신분을 바꾼 것이었다.
노정아 모녀에게는 숨길 것이 없었기에 지난 5년간 겪은 모든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노정아는 분노하며 말했다.
“그때 납치 사건은 정말 임채은이 꾸민 짓이야?”
“응.”
“그럼...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전 세계에 그 악독한 여자의 만행을 알리지 않는 건데?”
“그날 그 납치범은 총으로 자살했어. 암 말기인 그 사람에게 임채은이 엄청난 돈을 약속했고 아들을 해외로 보내주는 대신 죽음으로 입을 막기로 했지. 그런데 뭐라고 폭로해?”
“기가 막혀!”
노정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5년 전 네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안 돼서 그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나타났어. 서현우와 자기 아이라면서. 서씨 가문에서는 서현우가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해 너랑 결혼했대. 참 잔인한 놈이야!”
“그래서 내 모든 걸 되찾으려고 귀국했어.”
말하며 윤소율은 은행 카드를 건넸다.
“아줌마, 여기 10억이 들어 있어요.”
노봉희는 요독증을 앓고 있었고 가난한 가정에는 거의 불치병이나 다름없어 투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불치병이 아니라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 되지만 수술비가 엄청났다.
노봉희는 감히 받지 못했다.
“내가 해준 것도 없이 어떻게 네 신세를 져.”
“해준 게 없다니요? 이 돈은 그때 아줌마가 저를 돌봐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예요.”
말하며 윤소율이 노정아를 돌아보았다.
“정아 월급 미리 받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고요.”
“월급?”
“정아야, 나 현국에서 활동할 건데 내 매니저로 같이 일하지 않을래?”
노정아는 눈을 크게 뜨고 서둘러 말했다.
“기꺼이 하지! 너만 괜찮다면 말이야.”
“앞으로 내 곁에 있으면 두 사람은 내가 제대로 챙겨줄 거야.”
노정아가 죄책감 가득 말했다.
“오랫동안 우린 널 위해 해준 게 없어... 서린아, 네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면 난 정말로 보답할 방법이 없어...”
말하며 노정아가 털썩 무릎을 꿇더니 목 놓아 울었다.
윤소율은 즉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 정아야, 우리 사이에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 안 그럼 나 화낼 거야.”
노정아는 급히 일어나서 허둥지둥 눈물을 닦았다.
“오늘 입사 절차 밟고 내일 연우로 출근해.”
“응!”
...
연우 엔터테인먼트 회의실.
프로젝터에는 임채은의 샤넬 신제품 향수 촬영 화보가 재생되고 있었다.
샤넬 총괄 리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결과가 매우 만족스럽네요.”
임채은도 미소를 지었다.
“우리 채은이가 샤넬 브랜드 모델이 되어서 영광이에요.”
이수진이 그 틈에 물었다.
“그럼... 다음 계약은 언제 논의할까요?”
리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약 기간 동안 임채은 씨가 잘 해낸 건 인정하지만 다음 계약은 본사에서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이수진의 표정이 굳어졌고 옆에 있던 임채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거절이나 다름없는 말에 이수진은 당황하며 물었다.
“본사에서 우리 채은이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요?”
“아니요. 자세한 건 그냥 직접 말씀드릴게요. 윤소율 씨가 LV와의 계약이 곧 끝나서 여러 브랜드에서 연락을 보내고 있어요. 우리도 서둘러 샤넬 글로벌 앰버서더로 영입해야 해요.”
“...”
임채은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글로벌 앰버서더는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임채은은 샤넬의 특정 시리즈 향수의 브랜드 모델이나 몇 가지 제품 홍보만 담당했다.
브랜드 모델과 글로벌 앰버서더는 격차가 아주 컸다.
앰버서더는 브랜드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브랜드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글로벌 앰버서더와 지역별, 국가별 앰버서더가 따로 있는데 브랜드 모델은 특정 시리즈의 제품 홍보만 담당할 뿐이었다.
계약 내용도 다르고 몸값은 더더욱 달랐다.
임채은은 이번에 반드시 샤넬의 브랜드 모델에서 앰버서더로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못해도 국내 앰버서더 자리는 꼭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얼굴이 퍼렇게 질리고 이수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본사에서 원하는 다음 앰버서더가 윤소율이라는 건가요?”
리사는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회사가 더 가치 있는 여자 연예인을 브랜드 앰버서더로 정하는 건 회사의 자유가 아니겠어요?”
이는 윤소율이 임채은보다 브랜드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을 암시했다.
임채은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고 얼굴 근육이 뒤틀렸다.
“우리 채은이는 데뷔한 지 수년째 인기가 줄지 않고 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이며 화제성도 최고예요. 곧 서씨 가문의 사모님이 될 텐데 이렇게 큰 영향력과 가치를 귀사에서는 알아봐 주지 않는 건가요?”
“진지하게 고려해 보죠.”
말을 마친 리사가 임채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식적인 말로 이수진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임채은은 가슴 속의 답답함을 억누르며 일어나 그녀와 악수했다.
일행이 회의실을 나올 때 마침 마주 오는 윤소율과 마주쳤다.
임채은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고 리사는 즉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윤소율 씨.”
리사는 열정적으로 윤소율과 악수하며 말했다.
“어제 저희가 보낸 초대 이메일을 확인하셨나요?”
윤소율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임채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리사에게 말했다.
“귀사의 초대를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원만한 협업 기대하겠습니다.”
“네, 영광입니다!”
리사는 윤소율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밝은 표정으로 떠났다.
윤소율이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임채은이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윤소율 씨, 내걸 다 뺏으려는 건가요?”
그녀의 말투는 날카로웠고 주변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윤소율은 웃는 얼굴로 돌아서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뺏어요? 내가 뭘요?”
“샤넬 앰버서더는 원래 내 거였어요!”
임채은은 완전히 폭발했다.
“난 샤넬과 오래 협력했고 이 앰버서더 자리는 내 거라고요!”
리사가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
“브랜드 측에선 브랜드 가치를 신중하게 고려해 모델을 결정해요. 임채은 씨는 위치나 브랜드 가치 면에서 윤소율 씨보다 본인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나요?”
임채은은 말문이 막혔고 윤소율은 가볍게 말했다.
“설마요. 임채은 씨, 난 2년 연속 글로벌 브랜드 가치 1위를 기록한 여자 연예인이에요. 내 몸값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