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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200억, 딱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어.” 휴대폰을 통해 납치범이 차갑게 물었다. “서현우, 하나는 네 아내, 하나는 네 애인인데 한 명만 선택해.” 지하 창고에서 윤서린은 절망에 휩싸인 채 눈을 크게 떴다. 3일 전, 그녀는 납치되었다. 대외적으로 스캔들이 자자한 남편의 애인이자 대스타 임채은과 함께. 휴대폰을 통해 윤서린은 서현우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장난 그만해. 원하는 돈을 가져왔는데 한 명만 놓아준다고?” 납치범은 차갑게 웃었다. “서현우, 규칙은 내가 정해. 내가 한 명만 풀어주겠다고 하면 한 명만 풀어주는 거지.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윤서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200억으로 한 명만 풀어준다는 건 서현우가 두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자신이 서현우의 진짜 아내이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채은 앞에서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서현우가 날 선택할까?’ 이때 납치범이 휴대폰을 임채은의 입가에 대고 그녀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내자 임채은은 울기 시작했다. “현우 오빠, 나 무서워. 너무 무서워...” 전화 너머로 서현우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평소 강압적이고 차가운 남자였지만 임채은에게만 부드럽게 말했다. “채은아, 두려워하지 마.” 윤서린의 입술이 심하게 떨렸다. 납치범이 잡고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는데 그녀 얼굴에 붙은 테이프도 떼어졌다. 악당의 흉악한 얼굴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너도 남편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윤서린, 남편이 너 대신 애인을 구할까 봐 무섭지? 빌어보지 않을래?” 휴대폰이 앞으로 다가왔다. “빌어봐!” 윤서린은 벌벌 떨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전화기 너머 상대도 침묵했다. 그토록 오래 사랑했지만 어쩐 일인지 차가운 남자의 마음을 녹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함께 자랐지만 서현우가 윤서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아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숨겨두었다. 그는 서씨 가문의 귀한 장손이고 그녀는 서씨 가문의 도우미가 입양한 버림받은 아이였으니까. 양어머니가 흙더미에서 윤서린을 구해냈을 때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태생부터 천한 신분이 어떻게 서씨 가문의 미래 후계자와 어울리겠나. 게다가 윤서린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반점이 있어 어릴 적부터 사람들이 ‘못난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렇듯 못난 그녀가 그 고고한 서현우와 결혼했다. 어느 날 남자가 갑자기 스무살이 되면 결혼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윤서린은 무척 기뻐했고 여전히 결혼식 날 꽃을 든 채 식장에 서 있던 자기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지를 교환할 때 남자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줄 수 있지만 너를 사랑하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면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윤서린...” 잠시 후 서현우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왜 내가 너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선택에 이유가 필요하단 말에 윤서린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고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남자의 대답은 명확했다. 그는 임채은을 선택할 것이다. ‘그럼 나는?’ 배 속에는 남자의 아이가 있었고 의사는 쌍둥이라고 말했다. ‘날 버리면 두 아이도 버리겠다는 뜻인가?’ “서현우, 날 선택해달라고 한 적 없어. 하지만 당신 핏줄도 버릴 거야?” 윤서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작은 존재잖아. 난 죽는 게 무섭지 않지만 두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날 자격조차 없는 거야?” 납치범이 휴대폰을 거두며 차갑게 말했다. “좋아, 서현우. 이제 답을 줘.” 고요한 적막이 감돌고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입술을 꽉 깨문 윤서린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 직전에 서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채은.” 윤서린의 눈동자가 커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힘없이 주저앉으며 눈물이 예고 없이 흘러내렸다. 마치 영혼마저 빼앗긴 듯했다. 서현우는 그녀를 버렸다. 배 속의 아기도 원하지 않았다. “서현우, 네가 선택한 거야.” 납치범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고 그 순간 임채은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윤서린, 이젠 포기해!” 납치범이 임채은을 풀어주자 그녀는 일어나서 의기양양하게 윤서린을 돌아보았다. “서현우는 네가 아닌 날 선택했어. 그러니 이제 죽어도 돼!” “임채은...” 윤서린은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임채은이 꾸민 함정이었음을. 서현우가 선택하도록 강요해 윤서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끝내 처참하게 패배한 윤서린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쳤다. “임채은, 너 참 잔인하다!” 임채은은 윤서린 앞에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두피가 찢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며 임채은의 두 눈에 독기가 번뜩이더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윤서린, 네가 날 상대할 자격이나 있어? 이 역겨운 얼굴을 봐! 이러니 현우 오빠가 시험관 아기를 가지더라도 너한테 손도 안 대지. 현우 오빠가 왜 너랑 결혼한 것 같은데?” 윤서린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임채은은 몸을 숙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거 알아? 네 제대혈이 내 생명을 구할 수 있어.” 윤서린은 경악했다. “그게 무슨...” 임채은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너랑 내 혈액형이 맞아서 네 아기의 제대혈이 내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너랑 결혼한 거야. 네가 불쌍해서 명분이나 주려고 결혼한 거라고. 어렸을 때 이미 나랑 약혼했으니까 내가 진짜 약혼녀야. 넌 뭔데? 네가 임신한 지 5개월 됐을 때 현우 오빠는 이미 제대혈을 채취해서 날 민국으로 데려가 수술했어. 이제 나한테 너와 네 배 속의 아이는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어. 넌 그저 피 주머니였을 뿐이야.” 윤서린은 배신감에 온몸이 떨렸다. “거짓말, 서현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임채은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현우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건 맞아? 네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원한 적이 없어. 그게 아니면 왜 날 선택했을까? 넌 이미 이용할 가치가 없으니까.” 말을 마친 임채은이 호탕하게 웃었다. 윤서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임채은의 말이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서현우, 그녀의 남편이 애인을 위해 그녀와 아이를 버렸다. 한없이 무정한 남자는 단지 제대혈 때문에 윤서린과 결혼한 것이었다. 임채은은 갑자기 납치범의 허리에서 총을 뽑아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임채은은 음침하게 물었다. “네 배 속에 있는 망할 자식이 자라서 내 아이와 상속권을 다투게 두면 안 되지.” “안 돼!” 달칵. 소리와 함께 권총이 장전되었다. 차가운 총구가 윤서린의 배를 꾹 누르며 임채은의 표정은 잔인하게 변했다. “네가 현우 오빠 아이를 임신할 자격이 있어? 네 배 속의 아이가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지켜봐.” 윤서린은 절규하며 외쳤다. “내 아이는 해치지 마!” 흉악한 표정을 짓는 임채은의 예쁘장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옆에 있던 납치범이 그녀를 말렸다. “아가씨, 시체 처리하는 건 저한테 맡기세요. 괜히 손 더럽히지 말고.” “깔끔하게 처리해.” “네.” 윤서린이 저항하려던 순간 목뒤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며 손날에 맞아 기절해 버렸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창고 안은 끝없이 번지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꽃이 휩쓸며 타버린 천장이 계속해서 무너졌다. 윤서린은 한쪽 구석으로 기어가 무너지는 벽과 천장을 바라보며 여전히 고통스러운 배를 움켜쥐었다. “엄마 여기 있어... 아가, 두려워하지 마... 엄마는 너희를 영원히 지킬 거야...” 윤서린은 절망적으로 말했다. “서현우, 당신이 날 배신했어. 난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야. 다음 생엔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 “어제 여러 언론 기사에 따르면 오션 그룹 사모님 윤서린이 현지 시각 6월 12일 발생한 납치 사건에서 불행히도 사망했다고 합니다. 해당 사건은 경찰이 현재 전력을 다해 수사 중이고...” 오션 그룹 대표 사무실. 서현우는 손에 든 장례 관련 서류를 바라보며 두 눈이 차갑게 식었다. 꼿꼿하게 등을 펴고 앉은 그는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고 넓은 사무실엔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주도윤이 말했다. “사모님 시신은 이미 장례식장으로 옮겼습니다.” 남자의 손이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그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장례 관련 서류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살짝 떨었다. 잠시 후, 남자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펜을 가볍게 쥐고 가족란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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