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러나...
이곳에서 아무도 감히 윤소율에게 술을 권하지 못했다.
한지연이 갑자기 일어나 와인잔을 들고 윤소율 앞으로 걸어갔다.
“언니, 이제부터 같은 회사 동료가 됐으니 제가 한 잔 따를게요.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말하며 그녀는 술을 단번에 마셔버렸다.
그러나 한지연이 잔을 내려놓은 뒤에도 윤소율은 느긋하게 와인잔을 흔들며 눈빛에 장난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누가 당신이랑 한 가족이라고?”
한지연은 당황했다.
“우리요...”
“한낱 신인이 감히 나와 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나?”
윤소율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럴 자격은 있고?”
“...”
한지연은 다소 화가 났다.
“언니, 톱스타라고 날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이 작은 업계에서 늘 급을 따지고 위아래를 나누잖아. 나랑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때 잔 들고 와도 안 늦어.”
한지연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
“그건...”
“지연아!”
최군이 이름을 부르자 한지연은 불만 가득 최군 옆으로 돌아가며 억울한 듯 말했다.
“최 대표님, 언니가 저 인기 없다고 괴롭혀요...”
“윤소율 씨, 지연이가 아직 신인이라 이 바닥 규칙을 잘 몰라요. 그래도 환영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니까 너무 난감하게 하지는 말아요.”
윤소율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눈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최 대표님 사람이라는 걸 아는데, 최 대표님 있는 자리에서 제가 어떻게 괴롭히겠어요?”
다소 투정 섞인 듯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에 듣는 이로 하여금 뼈까지 녹아내릴 듯했다.
최군은 서둘러 물러섰다.
“내가 말실수했네요. 벌주로 마실게요!”
그가 술잔을 들어 올릴 때 갑자기 뒤의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둘러싸며 잘생긴 남자 하나를 맞이했다.
“서 대표님, 어서 오세요.”
소리를 듣고 시선을 남자에게로 돌린 윤서린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문 앞에서는 서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방 안의 분위기는 즉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연우의 임원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인물들인데 서현우가 들어오자 모두 일어나 정중하고도 아부 섞인 미소를 드러냈다.
“서 대표님, 안녕하세요!”
“서 대표님 어서 오세요!”
상류층에서 서현우는 1순위로 꼽히는 귀공자였다.
동시에 오션 그룹 대표로 재계 협상의 결정권을 손에 쥔 그는 현재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 수많은 기업의 운명을 거머쥐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의 생사가 그의 한 마디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누구라도 이 젊고 능력 있는 인물에게 아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현우는 여유롭고 우아하게 들어왔고 뒤를 따르는 정장 차림의 부하들이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며 그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다 문밖으로 물러났다.
윤소율은 서현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서현우는 눈길을 살짝 돌려 그녀를 응시했고 날카로운 눈매에서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서 대표님!”
최군이 웃으며 말했다.
“오실 때까지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앞장서서 대표님을 위해 먼저 건배하죠.”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
“물론이죠!”
“이건 당연히 마셔야죠!”
윤소율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이런 자리에서 늦게 온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데 서현우 위치만 봐도 그에게 감히 벌주를 권할 사람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일제히 술잔을 들었지만 서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재계의 가식과 위선에 치가 떨렸다.
자욱한 연기 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존경과 아첨이 가득했다.
오직...
남자의 시선이 다시 한번 구석에 있는 여자의 얼굴로 향했다.
어느 구석 조명이 어두운 곳에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최군은 서현우가 윤소율을 쳐다보는 시선에 심장이 철렁했다.
‘서현우가... 내가 눈여겨본 여자를 탐내는 건가?’
최군이 말을 돌렸다.
“대표님께서 파트너가 없어서 외로우시겠네요.”
말하며 그는 한지연의 허리에 가볍게 밀었다.
“지연아, 네가 가서 대표님 잘 챙겨드려.”
수줍게 웃는 한지연은 진작 안달이 나 있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고 배가 나온 최군보다 잘생긴 서현우가 더 좋았다.
외모도 훌륭한 데다 재벌가 집안에 엄청난 재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만약 그와 엮일 수 있다면 굳이 연예계에 발을 붙일 필요가 있겠나.
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임채은을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웠다.
최군이 시켰으니 빌미가 생긴 셈이었다.
한지연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 시선은 한지연을 얼어붙게 했고 그녀는 발이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무서운 눈빛에 함부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서현우는 손가락을 들어 윤소율을 가리키며 얇은 입술을 열었다.
“저기.”
모든 시선이 윤소율에게 집중되었다.
서현우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지?”
짧은 한마디였지만 옆으로 오라는 뜻은 분명했다.
한지연은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고 눈빛에 독기를 품었다.
윤소율이 일어나서 서현우 옆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갑자기 긴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윤소율의 표정이 확 바뀌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예고 없이 그의 품에 갇혀 서현우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한 뒤였다.
현재 그녀는 남자의 탄탄한 다리에 앉아 몸을 그에게 바짝 밀착시키고 있었다. 얇은 정장 소재를 통해 전해지는 남자의 체온과 이례적으로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바닥에서 서현우는 금욕주의자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가까이 두는 일이 없는데 그런 남자도 본능이 동할 때가 있는 모양이었다.
서현우는 여자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놀자면서요?”
“...”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어떻게 놀 건데요?”
윤소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은 어떻게 놀고 싶은데요? 원하는 대로 놀아드릴게요.”
한지연이 말했다.
“빨리 대표님께 술을 따라요.”
말하며 그녀는 직접 윤소율에게 술을 따랐다.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서 손가락 끝 흰 가루를 잔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묻힌 후 잔을 가볍게 흔들며 윤소율에게 건넸다.
윤소율은 술잔을 받아 슬쩍 훑어보고는 곧바로 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모르는 척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건배는 어떻게 하죠?”
“지연아, 네가 한번 어떻게 하는지 보여줘.”
최군이 웃으며 말하자 한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건배’ 방법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술잔을 들어 빨간 입술로 살짝 마시고는 최군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얼굴을 감싸며 입으로 술을 넘겨주었다.
사람들이 즉시 부추겼다.
“이게 진짜 술을 따르는 거지!”
“하하하, 지연아, 방금 술이 흘러 최 대표 옷을 더렵혔으니 벌로 석 잔 마셔야 해!”
한지연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최 대표님은 제게 벌을 주지 않을 거예요!”
최군은 한지연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윤서린에게 말했다.
“이제 술 따르는 방법을 알았죠?”
윤소율이 미소를 지었다.
“제 생각에 서 대표님은 이렇게 저속하게 술 따르는 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제 술은 좋아하겠죠.”
말하며 그녀는 와인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는 척 잔 가장자리에 선명한 붉은 입술 자국을 남겼다.
모두가 그 와인잔 위의 붉은 입술 자국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설령... 저 잔에 독약이 들어있더라도 목마른 짐승처럼 기꺼이 마실 거다.
윤소율은 물기가 어린 눈동자로 슬쩍 돌아보며 느긋하게 입술 자국이 남은 부분을 서현우에게 돌렸다.
“서 대표님, 제가 따르는 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