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조서연은 서울시에서 가장 유명한 천재 소아과 의사였다. 그녀는 수많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수술로 살려냈고, 언론은 그녀를 ‘서울 어린이 생명의 수호신’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사무실 책상 위에 억눌린 채 검은 총구가 그녀의 손목을 겨누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이자 서울시의 범죄 조직과 정계를 모두 장악한 윤씨 가문의 수장 윤지훈이었다.
윤지훈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부하가 들고 있는 태블릿 화면에는 병원으로 옮겨지는 아들 윤지율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섯 살의 윤지율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엄마...” 하고 웅얼거렸다.
“지율아!”
조서연은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서연아, 넌 오늘 이 두 수술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해.”
윤지훈은 총구를 조서연의 손목에 더욱 세게 눌렀다.
“민재를 먼저 구하든지, 아니면... 네 손 망가지고 민재와 지율이, 둘 다 죽게 내버려둘 건지.”
조서연은 핏발 선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윤지훈, 지율이도 당신 아들이잖아! 지금 신장을 적출당한 것도 모자라 합병증까지 왔는데 나더러 당신 사생아부터 구하라고?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일주일 전 그녀의 아들 윤지율은 하굣길에 납치를 당했다. 조서연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남편 윤지훈에게 연락해 아들을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아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아들 윤지율은 별장 문 앞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조서연은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신장 하나가 적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 밤낮없이 간호했지만 심각한 수술을 겪은 뒤 감염 증상까지 나타났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수술을 준비하던 중 원장은 그녀에게 또 다른 아이의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신장 이식 후 혈관 색전증이 발생한 여섯 살 아이, 하민재였다.
보호자 란에는 윤지훈과 서희진,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서연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 겉으로는 그녀를 끔찍이 아끼고 아이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던 남편 윤지훈은, 사실 그녀 몰래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보다 한 살이나 많은 아이까지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시간 낭비하지 마.”
윤지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율이의 안전은 내가 보장할게. 하지만 네가 민재 수술을 먼저 끝내야 나도 지율이를 구할 수 있어.”
조서연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릿함을 억누르며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윤지훈, 말해 봐. 하민재 몸속에 있는 신장, 혹시 지율이 거야?”
윤지훈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 서연아, 미리 말해두는데 민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지율이도 똑같이 당하게 될 거야.”
조서연은 현실을 받아들이듯 힘없이 눈을 감았다. 원망이 서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좋아. 당신 말대로 할게.”
떨리는 목소리는 몹시 쉬어 있었지만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반드시 지율이의 안전을 보장해 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든 민재를 내 아들과 함께 묻어버릴 거니까.”
윤지훈은 그녀를 쏘아보다가 손목에 겨누었던 총을 내렸다. 그리고 한층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지율이도 내 아들이야. 다치게 할 리 없잖아.”
그는 덧붙였다.
“민재 수술이나 제대로 해. 이 일만 끝나면 두 사람에게도 보상해 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서연은 극도의 모멸감을 느꼈다.
그녀는 힘껏 심호흡하며 미친 듯이 떨리는 두 손을 겨우 진정시킨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하민재의 몸속에 있는 아들 지율이의 신장을 바라보며 조서연은 끓어오르는 고통을 필사적으로 눌러 담은 채 수술을 마쳤다.
수술실 문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지훈에게 달려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 지율이는 어디 있어? 당장 만나게 해줘.”
그때 옆 수술실 문이 열리며 같은 과 의사가 얼굴이 새파래진 채 뛰쳐나왔다.
“큰일 났습니다, 윤지훈 씨. 지율이가 수술 도중 과다출혈로... 결국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조서연은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윤지율의 수술실로 달려갔다.
작은 아이의 몸 위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었고 온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눈도 뜨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뺨을 비비며 “엄마”라고 부를 수도, “엄마, 안아 줘”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조서연은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윤지율의 작은 몸 위에 엎드려 심장이 찢어지는 듯 울었다.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녀는 피를 토했고 아들의 작은 얼굴에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퇴근한 동료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서연아, 지율이 장례는... 네 남편 윤지훈 씨가 이미 하셨대. 그러니까 힘내고 몸조심해.”
조서연은 담담하게 감사를 전한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민재의 VIP 병실로 향했다.
그녀는 윤지훈을 닮은 하민재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손을 뻗어 그의 호흡기를 뽑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