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지만 조서연의 손은 희미하게 떨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쾅!”
그 순간 병실 문이 발로 차여 열렸고 윤지훈과 서희진이 부하들과 의사들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서희진은 조서연에게 달려들어 뺨을 후려쳤다.
“조서연, 이 미친년이 감히 내 아들에게 손을 대?”
윤지훈은 그녀의 손에 들린 호흡기를 보는 순간 격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그녀의 멱살을 움켜잡고 위로 들어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조서연, 미쳤어? 네가 어떻게 감히!”
텅 비어 있던 조서연의 눈동자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듯 흔들렸다. 그녀는 한때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남자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래, 나 미쳤어.”
조서연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윤지훈, 네가 우리 지율이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그런데 어떻게 됐어? 지율이는 죽었는데 왜 저 사생아는 살아 있어야 하는 거냐고!”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해!”
윤지훈은 차갑게 소리치며 그녀를 거칠게 밀쳤다.
“네가 의사라는 걸 잊지 마. 이런 짓을 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어.”
조서연의 뒤통수가 문틀에 세게 부딪히며 피가 흘러내렸지만 머리의 고통은 마음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맹렬하게 달려들어 그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지율이가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진정해!”
“잡아!”
윤지훈의 눈에 짜증이 스쳤다. 부하들에게 붙잡힌 조서연을 내려다보며 그는 차갑게 경고했다.
“진정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진정시켜 주지.”
그는 냉정하게 명령했다.
“뱀굴에 가둬. 내 허락 없이는 내보내지 마.”
조서연은 몸부림치던 동작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윤지훈을 바라보았다.
윤지훈의 능력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그가 뱀을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뱀굴 안에는 백 마리가 넘는 뱀이 사육되고 있었고 그는 그곳을 배신자들을 처벌하는 장소로 사용해 왔다.
예전에 윤지훈이 그녀를 좋아할 때는 뱀을 무서워한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별장 바로 옆에 있던 뱀굴의 위치까지 다른 곳으로 옮겼었다.
그런 그가 지금 그녀를 뱀굴에 가두려 하고 있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조서연은 온몸을 떨었다.
윤지훈은 그녀의 눈에 어른거리는 공포를 보고도 냉정하게 말했다.
“끌고 가.”
조서연은 넋이 나간 채 거의 끌려가다시피 뱀굴 안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문이 닫히자 잠에서 깬 뱀들이 머리를 쳐들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피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조서연은 공포에 질려 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그녀는 윤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보내 줘, 윤지훈. 나 진짜 죽어...”
윤지훈은 2초 동안 침묵했다. 그 침묵은 전화기 너머로 서희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이어졌다.
“지훈아, 민재가 깨어났어.”
그의 목소리는 다급하면서도 차가웠다.
“민재에게 손을 댄 대가야. 달게 받아.”
전화기에서 끊어진 신호음이 울리자 조서연의 마음속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이미 발밑까지 다가온 뱀을 바라보며 그녀는 오히려 냉정하게 품속에 숨겨 두었던 수술칼을 꺼내 뱀의 급소를 향해 힘껏 찔렀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지만 뱀굴의 뱀들은 끝없이 나타났다. 극심한 슬픔과 공포 속에서 조서연은 비틀거리며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결국 그녀는 쓰러지고 말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바닥으로 무너졌고 발치에 있던 뱀이 그녀의 다리를 휘감았다.
의식을 잃기 직전 무거운 문이 다시 열리며 윤지훈이 그녀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연아!”
조서연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과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시로 떠났고 서울대병원에 남아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
어느 날 과장이 그녀를 불러 과에 많은 의료기기를 기증한 기증자 윤지훈을 소개해 주었다.
그날 창밖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윤지훈의 얼굴에 쏟아졌고 그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윤지훈은 열렬히 그녀를 쫓아다닌 끝에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그녀는 집안에 알리지도 않은 채 그와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 생활은 6년 동안 이어졌고 아이는 5살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에게 또 다른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부러움을 샀던 로맨틱한 고백들과 황홀했던 순간들, 그와 나눴던 무수한 약속들, 그리고 평범하고 따뜻했던 행복한 일상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조서연은 눈물을 흘리며 지율이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깨어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 가업 승계를 받아들일게. 하지만 내 아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모두 대가를 치르게 헤야겠어!”
전화기 너머에서 침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서연아. 돌아온 걸 환영해.”
이어 조서연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이혼 합의서를 준비해 주세요.”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문밖에서 윤지훈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혼 합의서?”
조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차가운 냉정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 윤지훈. 우리 이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