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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알랑거리는 하지우를 보자 임가을은 눈을 흘겼다. “일 같은 소리 하네. 저런 놈은 공짜로 줘도 싫어. 비열한 새끼, 염치도 없이 들러붙고 말이야.”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아무도 내가 임씨 가문에서 이렇게까지 지위가 낮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우가 다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맞아. 정윤재보다 야비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혹시 널 좋아해서 뻔뻔스럽게 눌러앉은 거 아니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야유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게. 아니면 우리 학교 비주얼 원탑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 리가 없지.” “내가 보기엔 죽어라 공부해서 결국은 재벌가 입성을 노리는 것 같은데?” “하긴, 데릴사위로 딱이긴 해.” 방 안은 웃음소리로 떠나갈 듯했고, 수많은 경멸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마치 남을 깎아내림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듯했다. 편견에 이미 익숙했지만 동창에게 놀림을 당하니 아무래도 조금 불쾌했다. “대표님, 지시할 사항이 없으면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허리를 굽혀 임가을에게 말했고, 태도 또한 공손했다. “누가 나가도 된다고 했지?” 임가을이 나를 흘겨보았다. “이리 안 기어와? 이거 마셔.” 테이블 위에는 술 석 잔이 놓여 있었다. 전부 도수가 높은 양주였다. 그동안 옆에서 임가을을 보좌해 왔지만 술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술에 약한 체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억지로 먹이려고 작정한 듯싶었다. “대표님, 저... 위가 안 좋은 거 알잖아요.” 나는 성질을 꾹 참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동창들이 또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하여튼 몸 사리는 데 일등이라니까?” “괜히 여자한테 빌붙어 다니는 게 아니네.” 이때, 낯익은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과거 명진대에서 같은 과였던 이진혁이다. 대학교 다닐 때 어떠한 계기로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현재 내 모습을 보고 아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 비주얼 원탑이 이런 처지가 되었다니... 내가 분위기 좀 띄어볼까?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200만 원씩 줄게, 어때?” 이내 지갑에서 현금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각 술잔 아래에 정확히 200만 원을 끼워 넣었다. 룸 안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고, 하나같이 이진혁의 재력에 혀를 내둘렀다. “마셔.” 이진혁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우의 얼굴에도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번졌다. 임가을은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의미는 분명했다. “3초 줄게.” 그리고 위협적인 말투로 한 마디 던졌다. “알았어요.” 나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털어 넣었다. 오늘 밤은 굴욕의 시간이 될 것이다. 어느덧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독한 알코올이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석 잔을 비웠을 때 위장이 이미 뒤집혀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오, 대단한데? 석 잔 다 원액일 텐데.” 하지우가 냉소를 지었다. 이진혁의 눈빛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가을아, 그동안 정윤재를 아주 혹독하게 구워삶았나 보네?” “이 돈 가져가!” 머리가 띵한 와중에 지폐 한 뭉치가 내 얼굴을 강타했다. 마치 뺨이라도 맞은 듯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일어나.” 임가을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어지럼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솜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죄송한데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해방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 임가을의 쌀쌀맞은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거기 서!”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 그 자리에서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점점 심해졌고, 좀비처럼 화장실만 보고 걸어갔다. 세면대 앞에 서는 순간 참지 못하고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현기증 때문에 바닥에 꼬꾸라졌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정윤재?” 순간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낯설었지만 지금 이 순간 묘하게 듣기 좋았다. 의식을 잃기 직전 예쁘장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익숙했으나 도저히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윤재야!” 이내 몸이 붕 떠올랐고, 여자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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