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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세희는 최미희가 내뱉은 단어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한 문장으로 이어지니 도무지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뭐? 유골? 보석?’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는 순식간에 초점을 잃었다. 간신히 터져 나온 목소리는 낮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 방금, 뭐라고 했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최미희가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표정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네 ‘사랑하는 엄마’ 를 반지로 만들었다고. 예쁘지 않아? 살아서 한씨 가문 부인 자리를 차지했으니, 죽어서라도 죄를 갚아야 하지 않겠어?” 한세희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들어 그대로 최미희의 목을 움켜쥐었다. 분노 때문일까, 손끝에는 피가 몰렸고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눈물은 터지듯 흘러내렸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몸이 떨렸다. “죽여버릴 거야.” “너, 큭... 너 같은 게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순간 어머니의 온화하고 따뜻했던 모습이 한세희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누구보다 고운 사람이었는데... 죽어서조차 상간녀에게 모욕당한 채 편히 쉬지 못한다니.’ 최미희가 손톱으로 한세희의 손등을 마구 긁어 깊은 상처를 만들었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의 여자를 그대로 죽여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세희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숨 가삐 안으로 들이닥친 이도원이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기 때문이었다. 한세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이도원의 눈에는 공포와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미쳐버린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최지영은 울음 섞인 비명을 지르며 최미희에게 매달렸다. “언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지만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한씨 가문에 들어온 뒤로 언니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자꾸 왜 이러는 거야!!! 왜 자꾸 우리한테 이러는 거냐고!!!” 그 절규에 이도원의 눈에 어렴풋한 연민이 깃들었다. 그는 분노로 물든 얼굴로 한세희를 향해 소리쳤다. “한세희! 이번엔 네가 너무 심했어! 이분은 명목상일 뿐이지만 그래도 네 어머니야. 그런데 어떻게...” 한세희는 이도원과 할 말도, 다툴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최미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차갑게 말했다. “반지 내놔.” 유골이 반지가 되었다고 해도 한세희는 그 형태만이라도 가지고 떠나야 했다. 최지영은 눈물을 닦으며 최미희를 소파로 부축했다. 목소리는 겁먹은 토끼의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고작 반지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엄마는 언니가 말로 해도 그냥 줬을 거야!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엄마한테 사과해!!!” 최지영은 자신이 마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억울함과 우쭐함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도원은 그 옆에 말없이 서 있었지만 그 위치와 눈빛만으로도 누구 편에 서 있는지가 명확했다. 그가 손짓하자 저택 밖에서 기다리던 ‘백도원’ 의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세희 씨, 저희 도련님께서 최지영 씨의 안전을 지키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건장한 경호원들이 포위하듯 최지영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를 본 최지영은 놀란 듯 얼굴을 붉히며 낮게 말했다. “어머... 도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한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 툭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최미희는 얼굴을 이상하게 일그러트린 채, 만족감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도원의 눈에 아주 잠깐, 순간적인 연민이 스쳤다. 너무 짧아서 환각처럼 느껴질 정도로. “괜찮아, 세희야...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나는 괜찮아. 엄마는 언젠가 내 진심이 네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어. 반지 하나로 싸우지 말자, 우리.” 최미희가 반지를 빼며 한세희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툭. 반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 “어머!” 최미희가 놀란 척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순간 반지가 정확히 그녀의 발 아래 짓밟혔다. 반지는 한세희가 보는 앞에서 미세한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다. 바람이 스치자, 흩어진 조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머, 미안해. 세희야.” 반지가 없어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생전에도 지켜드리지 못했는데 돌아가신 뒤에도...’ 주변의 소리는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기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도원이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세희는 멍하니 도로 한복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한세희는 손가락을 움직여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냥, 어쩐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수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세희 씨. 내가 대신 복수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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