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노성훈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노우진과 신서빈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 지 이틀째 되던 날 노철민이 나를 집으로 불렀다.
나와 노우진은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나이였다.
그런데도 결혼이 미뤄진 건 아직 노성훈이 미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결혼하지 않으면 조카인 노우진이 먼저 결혼할 수 없다는 게 노씨 가문의 오래된 규칙이었다.
노성훈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그날 노철민과 뭔가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노씨 가문 저택에서 그를 다시 봤을 때 입가엔 멍이 들어 있었고 이마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게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 눈을 피하기까지 했다.
노철민은 마치 처음으로 노우진의 나쁜 짓을 알게 된 사람처럼 잔뜩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유리야, 노우진 그놈이 정말 너무했다! 너도 할아버지가 키우고 내 밑에서 자란 애인데 내가 어떻게 너를 그런 놈한테 억지로 맡기겠어? 차라리 성훈이가 낫지 않겠어? 내가 보증할게. 성훈이가 우진이처럼 굴면 내가 직접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릴 거다!”
듣기에는 거창했지만 그 말들이 다 공허하게만 들렸다.
나는 울먹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아직 노우진을 잊지 못한 사람처럼 침묵했다.
노철민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는 내 결혼 상대가 갑자기 바뀐 것에 대한 ‘보상’을 제시했다.
그의 명의로 된 미래 그룹 1%의 주식, 그리고 노성훈 명의로 있는 2% 지분을 내게 넘기겠다고 했다.
“성훈이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 우선 혼인신고부터 하고 나랑 네 외할아버지가 좋은 날 잡아서 결혼식은 성대하게 올려주마.”
약혼자가 바뀐 일,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엄마의 묘 앞을 찾았다.
“엄마, 저 결혼 상대가 바뀌었어요. 지난번에 엄마가 봤던 그 사람이에요.”
그날은 노성훈과 함께 혼인 신고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우연히 신서빈의 SNS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됐다.
거기엔 노우진의 잠든 얼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목덜미와 가슴 위엔 선명한 자국들이 찍혀 있었고 글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누구 남자 친구일까요?”
나는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그 게시물을 캡처해서 아빠에게 보냈다.
그리고 신서빈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아빠는 이모티콘과 함께 이런 문자를 보냈는데 그건 차라리 욕보다 더 기분 나빴다.
[뭐, 피 안 섞인 사이라면 괜찮지 않니? 어차피 남자는 다 밖에 여자를 두게 돼. 서빈이는 네 동생이잖아, 그래도 같은 편이니까 좀 낫지.]
예상했던 답이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제대로 자라겠는가.
신서빈과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지름길만 찾아다녔다.
남이 애써 가꾼 나무 그늘에 들어가 앉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노우진이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신서빈과 결혼할 일은 없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송씨 가문의 외손녀였고 그녀는 그저 내 아버지의 사생아일 뿐이었다.
그게 우리 둘의 차이였다.
“무슨 생각해?”
운전 중이던 노성훈이 내 쪽을 힐끗 보며 물었다.
“그냥 오늘 밤 어디서 잘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는 조용히 내 손을 잡더니 천천히 입을 맞췄다.
“신혼 첫날밤인데 날 혼자 재울 생각이야?”
나는 손을 빼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결혼식 끝나고 나서 얘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