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뚝 하고 떨어져 잔디 위에 스며들었다.
“괜찮아?”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낮게 울리는 따뜻하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
고개를 들자 노우진의 작은아버지, 노성훈이 서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반쯤 몸을 굽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왜 그래? 우진이가 또 화나게 했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노성훈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삼촌. 이제 놔주세요.”
하지만 그는 놓지 않았다.
노성훈의 손은 너무 따뜻했고 팔로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히려 담담했다.
“말해 봐. 이번엔 또 뭐야? 대학생이야, 아니면 모델? 너 대신 내가 가서 혼내줄까?”
그래, 언제나 노우진이 바람을 피우면 제일 먼저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그였다.
나는 노성훈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지만 그도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오늘 노우진이 했던 말이 스쳤다.
“성공한 남자 주변에는 유혹이 많아.”
‘하, 그렇겠지.’
하지만 노우진이 모르는 게 있다.
그의 작은아버지 역시 나를 계속 유혹해 왔다는 것을.
내가 노씨 가문에 처음 들어갔던 그해 여름 처음 본 사람은 노우진이 아니라 노성훈이었다.
두 사람은 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나이 차는 겨우 네 살.
그때 나는 외할아버지가 말한 약혼자가 그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얼굴이 붉어진 채로 조심스레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노철민이 가족들을 소개하며 말했다.
노성훈은 나와 동갑처럼 보이지만 가족 관계상 그는 나보다 한참 윗사람이라고.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겨우 노성훈에게 인사를 건넸고 당시 노철민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성훈이는 집에 잘 안 있어.”
그 말에 나는 안도하며 숨을 돌렸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 후로 나는 노씨 가문에 있을 때마다 항상 그를 마주쳤다.
아침마다 웃옷도 입지 않은 채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노성훈, 밤에는 수영을 끝내고 젖은 머리로 수영복 하나만 걸친 노성훈, 언제나 단정하고 냉담하게 빛나는 그 남자.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나와 노우진이 졸업을 맞아 축하 자리를 가진 날 그날 노성훈도 드물게 함께했다.
파티가 끝날 무렵, 두 사람 모두 취해 있었다.
노우진은 호텔에서 자겠다고 했고 노성훈은 집에 가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차 안에서 노성훈은 술기운에 젖은 채 내 손을 꽉 잡았다.
다섯 손가락이 내 손 사이로 깊숙이 끼워지고 반쯤 감긴 눈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렸다.
나는 멍하니 앉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노골적인 끌림이 묻어났다.
나는 그때마다 모른 척했고 아무 일도 없던 척 노성훈을 피해 다녔다.
그리고 오늘, 엄마의 묘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의 손을 스스로 잡았다.
“삼촌도 아시잖아요. 저는 엄마가 정해준 혼약만 믿어요. 노씨 가문에서 누가 그 혼약을 이행할지는 할아버님이 결정하실 일이고요.”
노성훈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햇살이 그의 어깨 위로 번져내려 눈부시게 빛났다.
“유리야, 이 말... 나는 7년 동안 기다렸어. 기다려.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