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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으으... 읍!” 매니저는 허둥지둥 몸을 피하려 했지만 도시락이 얼굴에 세게 눌려 몇 번이나 문질러졌다. 국물과 밥알이 얼굴에 덕지덕지 눌러붙었고 그녀는 이내 누군가의 손에 밀려 나가떨어졌다. 그대로 바닥에 넘어진 채 두 팔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떴다. 눈을 찌푸리며 얼굴에 들러붙은 밥알을 대충 떼어냈지만 주위를 둘러본 그녀의 시야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도시락을 내려다보니 조금 전, 윤라희에게 건넸던 바로 그 도시락이었다. ‘윤라희 X 같은 년, 가만 안 둬!’ 울컥한 매니저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휘날리며 조서영의 밴으로 돌아왔다. 안에서는 조서영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한 과일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매니저의 몰골을 보곤 깜짝 놀라며 눈을 부라렸다. “뭐야, 그 꼴은? 왜 그렇게 됐어?” 머리며 얼굴이며 옷까지 죄다 밥풀 범벅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매니저는 서럽게 울먹였다. “서, 서영 언니... 윤라희가... 제가 도시락 전해줬더니, 제 얼굴에 그대로 들이부었어요. 그러더니... 그러더니...” “뭐라 그랬는데?” 조서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매니저는 눈물을 훔치며 억울한 듯 말했다. “언니가 뭔데... 예전엔 자기 대역이었으면서 다 자기한테서 뺏은 거니까 하나씩 다 되찾을 거라며 두고 보라고 했어요.” 조서영의 얼굴이 일순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윤라희, 이제 정말 끝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매니저에게 명령했다. “윤라희가 줄 서서 도시락 받은 거, 지금 당장 인터넷에 뿌려. 댓글 작업도 같이 돌려. 아주 바닥까지 끌어내려.” 한때 잘나가던 배우가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보게 해줄 생각이었다. 매니저는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복수의 미소를 지었다. “네, 언니.” ... 한편, 차성 그룹 대표실. 차도겸은 여느 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높은 콧대, 얇고 매끄러운 입술, 그리고 서늘하게 빛나는 깊은 눈매. 신이 조각한 듯한 얼굴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지만 지금 그 얼굴에는 날 선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위장의 경련에 차도겸은 얼굴을 찌푸리며 배를 눌렀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두 시였다. 또 점심을 거른 것이었다. 그는 꽤 오래된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한 번 몰입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습관 탓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윤라희가 그런 그를 정성껏 돌봐주었다. 매일 위에 좋은 차를 끓여 텀블러에 담아줬고, 점심과 저녁 시간엔 꼭 문자로 식사하라고 챙겨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2년 동안만큼은 위장병이 한 번도 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혼 후, 그런 메시지도, 그런 정성도 사라지자 그는 다시 식사를 거르기 시작했고 겨우 나아졌던 병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차도겸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태가 벌써 며칠째였다. 그는 무의식중에 책상 옆, 원래 그녀가 챙겨준 텀블러가 있던 자리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차도겸은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자리는 늘 윤라희가 챙겨준 텀블러가 놓여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매일 아침, 직접 우려낸 차를 조용히 챙겨놓던 그 여자는 이제 더는 곁에 없었다. 습관이란 건 참 무서웠다. 딱 2년, 그 시간이 그에게 윤라희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각인시켜 버렸다. 차도겸은 말없이 서랍을 열고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위장약을 꺼냈다. 점심시간, 비서도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기에 그는 약을 손에 쥔 채 물을 뜨러 직접 탕비실로 향했다. 하지만 문턱에 다다랐을 때 안쪽에서 비서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윤라희 진짜 안됐어. 요즘 사진 봤어? 완전 초췌하던데.” “그러게. 예전엔 그렇게 잘나갔는데, 지금은 엑스트라들이랑 줄 서서 대충 급식 도시락 받아먹는다잖아. 진짜 안 됐다...” “뭐, 자업자득이지. 어떻게든 재벌가에 들어가려고 별수단 다 썼다면서... 대, 대표님!” 비서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문 앞에는 어느새 차도겸이 서 있었다. 회색 슈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셔츠의 단추 하나 흐트러짐 없이 잠근 채 조용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위압감이 은근히 감돌았다. 비서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차도겸은 무표정하게 안으로 들어가 컵에 물을 받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약을 삼킨 뒤에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손가락이 천천히 움켜쥐어졌다. 방금 들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열었다. 검색도 필요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윤라희’가 올라와 있었다. 기사 제목을 누르자 그녀의 사진들이 쏟아졌다. 햇볕에 노출된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고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그늘 하나 없는 그 뜨거운 촬영장 한복판에서 그녀는 마치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분명 이전보다 한참 말라 있었다. 그날 호텔에서 등을 돌린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토록 초라한 모습으로 긴 줄 맨 끝에 서 있는 윤라희를 보자,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한구석을 조용히 두드렸다. 긴 침묵이 흘렀고 그는 문득 사내 전화를 집어 들고 비서 이주성의 번호를 눌렀다. ... 온종일 촬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윤라희는 현관 앞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는 걸 보고 멈칫했다. “이 비서님? 여긴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다소 의아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주성은 잔잔한 미소로 답했다. “윤라희 씨, 늦게 끝나셨네요.” “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망설이던 이주성은 이내 본래의 태도로 돌아와 손에 든 서류봉투를 건넸다. “대표님께서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윤라희는 눈을 깜빡이며 서류를 받았다. “이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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