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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이주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봉투를 그녀 품에 안겨주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집에 들어온 윤라희는 소파에 앉아 서류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이혼 당시 차도겸이 그녀에게 주겠다고 했던 집문서와 차량 등록증, 그리고 카드가 들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분명히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 차도겸이 이주성을 시켜 다시 보낸 것이었다. 이런 건 받지 않기로 마음먹은 윤라희는 다시 서류를 모두 넣고 봉투를 닫았다. 다음 날 오후, 대역 촬영이 없던 윤라희는 봉투를 챙겨 택시를 타고 차성 그룹 본사로 향했다. 차성 그룹은 도원시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 한복판에 있었다.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은 주변의 고급 건물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윤라희는 로비로 들어섰지만 곧바로 안내데스크에서 제지당했다. “윤라희 씨, 예약하셨나요?” 안내데스크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비아냥 섞인 태도는 이제 익숙할 정도였다. 과거 윤라희가 차씨 가문의 며느리였을 때조차 회사 사람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일 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예약 안 했어요.” “그럼 죄송하지만 예약부터 해주시겠어요?” “전달할 게 있어서요. 물건만 전해드리고 바로 나올게요.” “적어도 한때 잘나가셨던 분인데 예약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세요? 대표님이 한가한 분인 줄 아세요?” 윤라희는 서류봉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휴게실에서 기다릴게요.” “죄송한데 오늘은 휴게실 사용이 제한됩니다.” 비웃음이 섞인 직원의 얼굴은 노골적인 경멸로 가득했다. ‘그깟 천한 연기자 주제에 아직도 본인이 대단한 줄 아나 보지. 웃기고 있네.’ 윤라희는 표정을 굳히고 차도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직원은 속으로 비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진짜 본인이 누구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결국 회사 밖으로 나온 윤라희는 그대로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해가 저물 무렵, 갑작스레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우산도 없었던 그녀는 건물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가방을 품 안에 꼭 안고 서류가 젖지 않게 보호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회사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윤라희는 고개를 들어 연신 차도겸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질 즈음 그녀는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렸다. ‘아직도 안 나왔어? 또 야근하는 건가?’ 결혼 생활 내내 그는 종종 늦게까지 일을 하곤 했다. 문득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쳤어. 진짜... 이혼했는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 윤라희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하늘은 점점 어두어졌고 그녀는 더는 서 있을 수 없어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선 어느새 잠이 들었다. 차도겸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왔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고 그는 운전기사에게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대라고 지시했다. 윤라희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눈을 떴다. 익숙한 차가 빗속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몸을 털고는 재빨리 차를 향해 뛰었다. ‘이런, 잠들다니!’ 머뭇거릴 새도 없이 윤라희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를 맞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멈춰! 차도겸! 잠깐만...!” 윤라희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지만 거센 빗소리에 묻혀 그의 귀에 닿을 리 없었다. 그녀가 겨우 도로 쪽까지 달려갔을 땐 이미 차는 시야에서 멀어진 뒤였다. 비는 너무도 거셌고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하게 번질 만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윤라희는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왜소한 그녀의 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차 한 대가 있었다. 운전기사는 이런 폭우 속에 누가 길가에 서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고 가까이 다가와서야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급히 핸들을 꺾었지만 너무 늦었다. 차는 간신히 옆으로 피했으나 윤라희의 어깨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차량 바퀴가 튀긴 흙탕물이 그대로 윤라희의 몸을 덮쳤다. 가녀린 몸은 도로 옆에 나뒹굴었고 힘없이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차 안에 있던 차도겸은 순간 심장이 움찔하며 요동쳤다. “차 세워요!” 끼익. 운전기사도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차도겸은 이미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에 시야는 흐릿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진하세요.” 차도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뭐? 후진하라고?’ 운전기사는 앞에 있는 CCTV를 흘끗 바라봤다. 이대로 후진하면 과태료가 나올 게 뻔했다. 하지만 잔뜩 굳어있는 차도겸의 표정을 본 운전기사는 더 묻지 않고 서서히 후진했다. 조금 뒤, 길가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물에 반쯤 잠긴 채 움직임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운전기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진짜 사람인가?’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차도겸이 벌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폭우가 퍼붓는 와중에도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표님, 우산...” 운전기사는 급히 우산을 챙겨 나가려 했지만 차도겸이 이미 윤라희를 안은 채 다시 차 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차도겸은 온몸이 젖어 있었다. 방금 차에서 내릴 때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고급 승용차 내부는 젖은 물기로 흥건했다. 그럼에도 평소 결벽증이 있는 차도겸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섞인 조급함과 긴장감은 감출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서둘러 차를 돌려 병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춘 사이, 룸미러로 슬쩍 뒷좌석을 바라본 운전기사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윤라희 씨...?’ 그가 품에 안고 있는 여자가 윤라희라는 걸 깨달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도겸은 윤라희를 혐오했다. 아내로 여긴 적도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고 심지어 이혼도 그가 밀어붙인 쪽이었다. 호텔에서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본 뒤엔 아예 빈손으로 내쫓았고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질색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젖은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라희 씨를 그토록 미워했던, 대표님이 맞긴 맞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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