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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노민준은 노재우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장민영이 없었더라면 노민준은 소아청소년과가 어디 있는지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는 노재우의 상태를 확인해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재우는 오늘 오전에야 열이 내렸어요. 손등에 남은 바늘 자국이 없어지지도 않았는데 차가운 콜라를 마시게 하면 어떡해요? 재우는 원래 위가 약한 편인데 아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죠?” 노민준이 말했다. “재우는 줄곧 재우 엄마가 돌봤어요.” 의사가 말했다. “아이를 누가 돌봤든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상식이라고요. 보호자님은 재우 아빠가 맞긴 한가요?” 노민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 고지수가 노재우를 일부러 약하게 키웠을 것이다. ‘돌아가면 한마디 해야겠어!’ 의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자주 열이 나면 합병증이 생기기 쉬워요. 당분간은 먹는 것에 신경을 쓰세요. 간은 심심해야 하고 자극적이거나 차가운 음식은 절대 먹이면 안 돼요. 일단 열이 떨어질 수 있게 약부터 처방해 드릴게요.” 장민영은 의사가 준 처방전을 건네받으면서 감사 인사를 한 뒤 노민준에게 물었다. “사모님에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노재우는 노민준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노민준이 코웃음을 쳤다. “얘기하면 뭐 해요? 나랑 이혼하겠다고 이혼 합의서까지 보낸 사람인데.” 노재우는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려뜨렸다. 노민준이 말했다. “크게 아픈 것도 아니잖아요. 일단 저는 여기 남아서 재우를 돌볼 테니까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서 짐 좀 챙겨주세요. 내일 아침 바로 병원에서 회사로 출근할 거니까요.” 장민영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픈 아이의 곁을 밤새워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노민준은 그녀에게 재우를 돌보라고 하지는 않았다. 밤이 되자 노민준은 간이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동화를 찾아 아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었다. 그는 아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무슨 바보 같은 내용이지? 너 매일 이런 거 들었어?” 노재우는 노민준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엄마가 읽어준 거예요.” “고지수도 참...” 노민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지수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지수는 늘 밝고 활기찼으며 엉뚱했다. 고지수는 노민준을 마주칠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발꿈치를 들고 고개를 치켜들며 귀엽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노민준의 어머니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서 그와 약혼시킨 뒤로, 고지수는 현모양처로 살았다. 지극히 보수적이었고 매력도 없었다. 고지수만 아니었다면 그도 이렇게 이른 나이에 일찍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충분히 즐기지도 못했는데 덜컥 아이까지 생겨버렸다. “자. 아빠가 옆에 있어 줄게.” 노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아플 때는 엄마가 옆에 있어 줬는데 아빠가 옆에 있어 주는 것도 좋았다. 노재우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목이 마르고 손등이 아파서 눈을 떠 보니 병실 안이 깜깜했다. 노재우는 아빠를 두어 번 불렀지만 깊이 잠든 노민준은 아이의 말을 듣지 못했고, 결국 노재우는 어쩔 수 없이 목청을 높여 노민준을 크게 불렀다. 너무 많이 불러서 목이 아플 때쯤에야 노민준이 깨어났다. “아빠, 저 물 마시고 싶어요.” 노민준은 하품하면서 컵에 물을 따른 뒤 병상 옆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노재우가 아프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다시 돌아가 따뜻한 물을 따른 뒤 노재우에게 건넸다. “마셔.” 노재우는 당황했다. 예전에 아플 때면 엄마는 항상 빨대를 꽂아서 먹여줬다. 노민준은 노재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내가 먹여줘야 하는 건 아니지? 이젠 다 컸는데 사나이처럼 컵을 들고 마셔야지.” 노재우는 목이 너무 말라서 수액을 맞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한 채 손을 뻗어 컵을 건네받았다. 그 탓에 바늘이 움직이며 노재우의 부은 손등에 상처를 냈다. 노재우는 원래 몸이 좋지 않은 데다가 유약한 편이라 곧바로 눈물을 떨구었고 노민준은 그제야 노재우가 수액을 다 맞은 걸 발견했다. 피가 살짝 역류한 데다가 손등도 부어 있었다. 노민준은 노재우에게 컵을 건네며 말했다. “일단 마셔.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의사는 금방 왔다. 노재우는 오늘 두 번 열이 나서 수액도 두 번 맞았다. 두 손 모두 퉁퉁 부어 있는 것이 많이 아파 보였다. 노민준은 그제야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지수도 그동안 꽤 고생했을 것이다. “내일 혜리 이모한테 널 돌봐주라고 할게.” “내일도요? 엄마한테 연락하는 건 어때요?” 노재우는 작은 손으로 이불을 꼭 쥐고 노민준의 눈치를 살폈다. 노민준이 물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노재우는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싶은 것처럼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픈 걸 안다면 엄마는 틀림없이 돌아올 거예요. 그러면 아빠도 돌아가서 쉴 수 있잖아요... 엄마한테는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할게요.” 노민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노재우에게 건넸다. “그래. 네가 원하니까 하게 해주는 거야. 전화해.” 노재우는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뒤 고지수의 전화번호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텅 빈 병실 안에 울려 퍼졌고 잠시 뒤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고객님께서 통화 중입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기시 바랍니다.” 노민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새벽 1시에 누군가와 통화 중일 가능성은 작었다. 게다가 노재우가 세 번이나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통화 중이었다. 아마 고지수가 그를 차단했을 것이다. 노재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노민준을 바라보았고 노민준은 코웃음을 치면서 휴대전화를 가져왔다. ‘그래. 날 차단했다 이거지? 앞으로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니까 각오해야 할 거야!’ 노민준은 고지수의 번호를 차단했다. “일단 자. 내일 혜리 이모 부를게.” “그러면 엄마는요?” “엄마는 다시 돌아와서 우리에게 애원하게 돼 있어. 어쩌면 내일 올지도 몰라.” 노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 이번에 엄마를 크게 혼쭐내야겠어요!” “그래.” 노재우는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뒤 말했다. “아빠, 저 만둣국 먹고 싶어요.” 엄마가 만든 만둣국이 먹고 싶었다. 노민준은 아들의 말을 듣고 고지수가 만들어줬던 만둣국을 떠올렸다. “내일 혜리 이모한테 사 오라고 할게.” 윤혜리는 이튿날 아침 노민준의 전화를 받고 노재우가 다시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민준은 그녀에게 노재우를 돌봐달라고 했고 오는 길에 만둣국 2인분을 사 달라고 했다. 윤혜리는 기뻐했다. 노민준은 어제도 오늘도 그녀에게 재우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긍정이자 자신의 아내에 대한 혐오를 의미했다. ‘이건 좋은 기회야!’ 윤혜리는 유명한 가게에서 만둣국 2인분을 포장하여 병원으로 챙겨갔다. 그런데 노재우는 한 입만 먹고는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노민준은 숟가락으로 그릇을 두드리며 음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노재우는 그제야 다시 숟가락을 들고 천천히 만둣국을 다 먹었다. 노민준은 출근하러 가기 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쨍쨍한 아침 햇살 아래, 윤혜리는 침대 옆에 앉아 노재우을 위해 사과를 깎아주었고 노재우는 얌전히 윤혜리를 바라보았다. 아주 다정하고 완벽한 장면이었다. 노재우는 그 사진을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글은 쓰지 않았다. 이내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양문빈이 말했다. [어라? 저 사람 일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비서잖아요? 아이도 잘 돌보다니, 진짜 대단하네요.] 최성빈이 말했다. [재우 엄마 바꿔주려고? 확실히 너한테는 저 비서가 더 잘 어울려.] 박주경이 말했다. [고지수 씨 내일 난리 나지 않겠어?] 노민준과 심민지는 겹치는 지인이 많았는데 박주경이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노민준이 박주경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았다. [요즘 자기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성질은 얼마나 부리는지. 자기 아들까지 밀어낸다니까. 그런데 내가 뭘 어쩌겠어?] 박주경이 댓글을 남겼다. [...]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노민준은 왜 갑자기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 것일까? 그가 쓴 것이 한국어가 맞긴 할까? 심민지는 노민준이 올린 게시물과 그의 친구들이 남긴 댓글들을 보고 화가 나서 곧바로 그것들을 캡처하여 고지수에게 보내줬다. 그러고는 노민준과 노재우, 윤혜리를 욕하는 글들을 가득 적어서 보냈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고지수에게 연락했고 고지수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심민지는 곧바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노민준! 누가 봐도 일부러 올린 거네. 너를 자극하려고 말이야.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개 같은 자식이 있을 수 있지?” 고지수는 잠깐 조용해졌다. 심민지가 보낸 사진에 고지수는 가슴이 저리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오랫동안 사랑한 남편이고, 목숨 걸고 낳아서 사랑으로 키운 아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이 없는 고지수 때문에 심민지는 금방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지수야, 너무 슬퍼하지 마.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응.” 고지수는 평온한 목소리로 다른 것을 물었다. “이혼 합의서는 받았어?” “아니. 못 받았어! 노민준 뭐 하자는 거야? 설마 너랑 이혼하기 싫은 건 아니겠지?” 심민지는 고지수가 진흙탕 같은 결혼 생활에 발이 묶이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찾아가서 얼른 보내라고 할게.” “됐어.” 심민지와 노민준은 만날 때마다 싸웠다. 심민지는 연예인이라 옳은 말만 해도 구설에 오르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다른 일 때문에 조금 지체된 걸지도 몰라. 노민준이 이혼을 원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노민준은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그녀를 쫓아내려고 했었으니 이런 기회를 걷어찰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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