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예상치 못한 따귀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폭행 장면을 목격하고도 모든 사람이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엔 얌전해 보이더니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 인간인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에요. 뻔뻔하게 자가라고 하더니. 이제 갓 20대가 된 여자애가 무슨 돈으로 몇십억이 넘는 아파트를 사요?”
주변에선 질타의 목소리가 하나둘 들려왔다. 심지어 평소 인사를 나누며 지내던 이웃도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역시 사람은 외모만 보고 평가하면 안 된다니까.”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심수빈을 노려보았다.
“심수빈 씨, 그쪽 남편은 우리 회사 거래처 대표 중 한 명에 불과해요.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제 집에서 나가주시죠. 안 그럼 신고할 거예요.”
나의 신분을 밝히면 심수빈이 오해를 풀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심수빈은 오히려 손을 들어 또다시 나의 뺨을 내리쳤다.
“여우 같은 X이 거래처 좋아하네. 넌 침대에서 비즈니스 하니?”
조금 전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뺨을 맞았지만 두 번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나는 날아오는 심수빈의 손을 가로채 뒤로 밀쳤다.
“심수빈 씨, 조금 전 때리신 그 따귀는 제 변호사에게 폭행으로 고소하라고 할 겁니다.”
밀쳐진 심수빈을 본 주변인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네가 폭행으로 고소를 해? 그러면 우리가 무서워할 줄 알아?”
눈을 번뜩이는 그들은 마치 미친 X 같았다.
구경하던 이웃들도 하나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인간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니, 재수가 없기도 하지.”
“그러게요. 어쩐지 평소에도 화려하게 입고 다니더라니, 유부남 돈이나 뜯으면서 살았던 거네요.”
이웃들은 끊임없이 욕을 퍼붓고 있었고 옆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던 유튜버들은 작정한 듯 카메라를 들이댔다.
[다들 이 꽃뱀 얼굴 똑똑히 기억해 둬요. 나중에 길에서라도 만나면 절대 가만 놔두지 말자고요.]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지. 유부남을 꼬신 거로도 부족해 수빈 씨 돈으로 수빈 씨 집에 살고 있잖아요!]
유튜버들의 부추김에 댓글창은 나를 겨냥한 악플로 가득했다.
심수빈은 집으로 들어와 불같이 분노를 터뜨리며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건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욕설을 지껄였다.
“우리 부부 돈으로 여기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한번 잘 지내봐! 여기 있는 거 전부 부숴버릴 테니까!”
생방송 댓글창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시청자 역시 무섭게 증가하고 있었다.
유튜버들은 마치 조회수를 올릴 히든카드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정의감 넘치는 발언으로 나를 비난했다.
“법이 간통죄로 당신을 처벌할 수 없다면 저희가 시청자분들을 대신해 정의를 구현할 거예요.”
[시청자 여러분. 구독, 좋아요와 알람 설정을 해주시면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 불륜녀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게요.]
순간, 집안은 깨지고 부서지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미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보며 나는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부수고 싶으면 얼마든지 부숴요. 하지만 본인들이 하신 일에 책임을 질 수는 있을지, 잘 생각하셔야 할 거예요.”
심수빈이 고개를 돌려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수억이 넘는 파텍필립 시계를 온 힘을 다해 바닥으로 내던졌다.
“내가 부수면, 네가 어떡할 건데?”
바닥에 던져져 박살이 난 시계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심수빈은 시계를 밟으며 나에게 몰상식하다며 욕을 던졌다.
“저 시계 파텍필립 같은데, 가격이 최소 2억은 넘을 거야.”
시계의 브랜드를 알아본 이웃이 옆에서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심수빈이 움찔, 행동을 멈췄다.
자신이 망가뜨린 시계가 그렇게 비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내가 막 심수빈에게 말하려던 그때, 옆에서 촬영 중이던 유튜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빈 씨, 겁내지 마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은 수빈 씨 남편이 사준 거잖아요. 고소만 하면 전부 돌려받을 수 있어요.”
“자기 물건을 부수는 게 불법은 아니잖아요.”
그 말에 정당한 이유라도 찾은 듯 심수빈이 눈을 반짝였다.
“파텍필립이면 뭐?”
“그것도 내 돈으로 산 거잖아. 이것들, 전부 네가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입을 열었다.
“심수빈 씨 남편이 사줬다는 증거 있어요?”
“증거? 걱정하지 마. 모든 증거는 인터넷에 공개해 버릴 테니까.”
“부숴버려요! 전부 다!”
심수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심수빈을 따라온 사람들은 그 말에 잔뜩 흥분하며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불륜녀 퇴치 어벤져스라던 유튜버들은 휴대폰을 들고 날뛰기 시작했다.
저 인간들을 도무지 말릴 수 없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 신고 전화를 눌렀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이 들리던 그 순간, 누군가 휴대폰마저 떨어뜨렸다.
[여러분, 저 여우 X 이 감히 신고한다네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네요.]
[남의 남편 꼬드길 땐 이렇게 될 줄 몰랐나 보죠?]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난 그 인간들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당신들이 이런 짓을 시작했을 땐, 뒷감당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유튜버들은 내 경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끊임없이 물건을 부수며 시청자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깨고 부수는 행위를 멈추지 않은 채 시청자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시청자 여러분, 좋아요와 구독 많이 눌러주세요. 꽃뱀 화장품도 전부 깨버려야지.]
[얼씨구. 화장품도 죄다 명품뿐이네요. 남자를 한두 명 홀린 게 아닌 것 같은데요?]
팍!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화장품들이 작살이 나고 있었다.
[본인이 꼬리 쳐서 얻은 물건들이 깨지는 꼴을 지켜보라고 하죠, 뭐.]
[유부남을 꼬드기면 어떻게 되는지, 저런 상간녀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요.]
누군가 말하며 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물건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여기 좀 보세요. 여기 백자도 있어요. 심지어 청화백자 같은데요? 하, 상간녀 주제에 뭘 안다고 있는 척하기는. 여러분, 이것도 깨요?]
[좋아요. 여러분 말대로 수빈 씨를 위해 저희 불륜녀 퇴치 어벤져스가 꼭 복수할게요! 부숴!]
“경고하는데, 그 청화백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다급히 입을 열어 유튜버의 행동을 제지했다.
쨍그랑!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아한 소리와 함께 경매에서 40억을 주고 산 청화백자가 산산조각이 났다.
잠깐 사이, 거실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고 단 한 가지도 온전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신고도 하지 못하게 나를 꽉 잡고 있었지만 전혀 조급하지는 않았다.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분명 누군가는 녹화하고 있을 테였다. 나중엔 그 모든 것이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콧대 높게 굴면서 협박까지 하더니, 눈앞에서 모든 물건이 망가지는 걸 본 소감이 어때?”
심수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내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깨뜨리는 용기가 있었던 만큼, 책임도 지시길 바랄게요.”
“그땐, 제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셔도 소용없어요.”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내뱉는 사이, 이미 누군가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액세서리 수납함을 들고나왔다.
그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리 값비싼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납함엔 엄마가 남겨주신 유품이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