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여수민은 미소를 짓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하준혁과 시선과 마주쳤다. 뭔가 억누르는 듯했고 곧 터질 것 같은 기세가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여수민은 바래다줄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데, 하준혁이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듯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빨리, 나 바빠.” 여수민은 그가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와 같은 재벌 2세는 아마 거절당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가 정말 간이 부었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여수민은 꾸물거릴 수 없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얌전히 하준혁의 뒤를 따랐다. ‘하준혁 씨는 분명 자존심이 있을 테니, 다시는 나를 찾아와서 물어보지 않겠지?’ 하준혁은 마이바흐를 직접 운전했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여수민은 머뭇거리며 마치 기꺼이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차에 앉았다. 그제야 그는 차갑게 비웃으며 차 앞으로 돌아와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가 별장을 막 벗어나자 여수민은 곧바로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여 말했다. “길가에 내려주세요. 저는 지하철 타고 돌아갈게요.” 하준혁은 못 들은 척,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왼손으로 턱을 괴었으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수민은 입술을 깨물었고 민망함을 느꼈다. 김미숙의 집은 그녀의 집과 거리가 꽤 있었고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여수민은 말없이 가방에서 중고 태블릿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은 매우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였다. 틈틈이 기침할 때마다 온몸이 흔들렸는데, 기침 때문에 눈물이 났고 마스크가 호흡에 따라 들썩이는 것을 보니 기침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끊임없이 하품했지만 그래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하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운전대를 다른 손으로 바꿔 잡더니, 오른손을 뻗어 태블릿을 빼앗아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깜짝 놀란 여수민은 황급히 태블릿을 잡으려 했지만 하준혁은 그녀의 머리를 눌러 다시 자리로 돌려놓았다. “자. 도착하면 깨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