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책상 옆에 앉아 있던 강희천의 손이 술잔을 들려다 말고 잠시 멈췄다.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김 대감은 그제야 얼굴이 달아올랐다.
참고 참았던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끝내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봤나!”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정혁은 의기양양하게 김 대감의 팔을 밀쳐내며 코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옆에 놓인 책상에서 새하얀 한지를 홱 잡아당기더니 손에 먹을 묻혀선 단숨에 붓을 휘둘렀다.
“우리 김씨 가문이 아무리 크다 해도 아무나 붙잡고 사돈을 맺을 수는 없는 법이오.”
“좋소. 오늘은 이 자리에서 시험 하나 보겠소. 내가 위 구절을 세 개 낼 테니 그것에 어울리는 아래 구절을 지어 낸다면 내가 이 혼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그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글씨를 써내려갔다.
[그린 그림 속 연꽃, 스님 또한 그림 속 사람이네.]
“좋소.”
상석에 앉은 주성운 대감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 구절은 ‘꽃’ 자를 가운데 두고 ‘그림 속 연꽃’과 ‘그림 속 스님’이라는 말맛을 교묘히 엮어냈소. 의미도 살아 있고 음률도 잘 어우러졌으니 이 정도면 꽤 쓸 만한 글이지.”
주성운이 직접 칭찬하고 나서자 김 대감도 더는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고는 낮게 일갈했다.
“허튼짓도 정도껏 하거라. 이런 자리에서 시답잖은 장난 부리지 말고.”
하지만 김정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붓을 다시 들어 두 번째 구절을 이어 썼다.
[꽃은 짙고 그늘은 깊어 저 건너 뜰에 피리 소리 들리니 이 마음도 어느덧 서늘해진다.]
그러고는 마지막 한 구절을 힘 있게 써 내려갔다.
[세월은 다르고 시대는 흘렀지만 이 강산은 그대로 남아 있구나. 용이 엎드리고 범이 누운 이 땅에 과연 어떤 스승들이 머물렀던가.]
세 구절을 잇달아 써 내려가자 좌중엔 잠시 조용한 숨소리만 감돌았다.
그러다 술기운이 오른 한 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 도령의 글솜씨, 감탄할 따름이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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