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안설아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녀는 지상욱의 품에 안겨 작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
나를 보자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오빠, 저 여자 꺼지라고 해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지상욱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자상한 말투로 말했다.
“쉬... 진정해. 여기 사과하러 온 거야.”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냉랭하게 변해 있었다.
“멍하니 서서 뭐 해?”
나는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미안해.”
“그게 끝이야?”
지상욱의 품에 안긴 안설아가 고개를 들더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오빠,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이런 더러운 병에 걸렸어요. 만약 소문이라도 나면 제 연예 활동은 물 건너갔단 말이에요. 앞으로 대스타가 되기는 글렀는데 고작 사과 한마디로 넘어가자고요?”
지상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뭘 원하는데...”
“네가 진짜로 만족할 만한 사과 해주면 되잖아.”
나는 지상욱의 말을 끊고 불쑥 끼어들었다.
“2시간만 기다려줘.”
그러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두 시간 후, 병원 1층이 갑자기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고용한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다시 병원에 나타났다. 각자의 손에는 빨간 현수막이 들려 있었고, 그 위의 노란 글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안설아, 미안해! 에이즈 걸린 신장을 기증하는 게 아닌데, 제발 용서해줘.]
이때, 한 아주머니가 메가폰을 들고 안설아의 병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안설아 씨, 죄송합니다! 정나현 씨가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에이즈 걸린 신장이긴 해도 좋은 뜻으로 기증한 거잖아요. 물론 그때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억지로 기증하라고 시킨 건 안설아 씨 아닌가요? 아무튼 원하는 건 다 맞춰드렸잖아요. 괜히 화병 나면 본인만 손해예요.”
병실 창문이 하나둘 열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들이 안설아의 병실을 향해 쏟아졌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이 펄쩍 뛰었다.
“원작은 이런 식의 사과가 아니라고!”
“사과에도 방식이 있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잘못을 인정하면 그만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상욱이 씩씩거리며 뛰어왔다.
그는 메가폰을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정나현, 너 미쳤어? 설아는 배우야! 아주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뜬 ‘후회치’를 바라보았다.
이미 50%까지 차 있었다.
그리고 억울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나는 그냥 설아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느꼈으면 했을 뿐이야... 아니면 내일 다시 한 번 할까?”
지상욱은 노발대발하며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정나현, 사람 말 못 알아듣니? 어떻게 감히 이런 짓을 해? 너희 엄마 약 끊어버린다!”
말을 마치자 휴대폰이 올렸다.
전화를 받은 지상욱은 안색이 금세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내 통화를 마치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는 구겨진 옷깃을 툭툭 털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형 전광판을 통째로 빌려서 사과 영상 24시간 내내 튼 거 빼고.”
힘줄이 불끈 솟은 그의 이마를 바라보며 나는 친절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방송국에 연락해서 인터뷰라도 잡을까?”
“이...!”
지상욱이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뺨을 때리려는 찰나, 간호사가 황급히 달려와 그를 막았다.
“보호자분, 큰일 났어요! 환자분이 스스로 손목을 그었어요.”
지상욱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더니 서둘러 병실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뛰어가는 와중에 뒤돌아보며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설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도 같이 매장당할 줄 알아.”
나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봐, 곧 60%가 되겠어. 오늘 어디 한 번 100% 도전해? 다들 몇 년씩 걸려서 공략한다던데 나처럼 이렇게 빨리 깬 사람한테는 보너스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스템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보너스는 개뿔! 안설아가 자살하는 내용은 원작에 아예 없다고. 지금 스토리가 완전 산으로 가고 있어.”
“급하긴.”
나는 하품을 하며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안설아가 그렇게 쉽게 죽을 애도 아니고.”
시스템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상욱이 홧김에 널 죽일 수도 있는데 두렵지도 않아?”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거야말로 잘된 일이지. 그럼 다 같이 죽지, 뭐. 다만 지상욱이 나한테 신경 쓸 시간이나 있을까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