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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강소희는 엄청 야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녀는 복근이 있는 데다가 키까지 큰 존잘남과 잤다. 30년 된 모태 솔로라 실전 경험은 없지만 이론은 꽤 있었다. 어차피 꿈이니 평생 모은 이론을 몽땅 총동원해 꿈속의 남자와 실컷 애정 행각을 벌였다. 그런데 솔직히 꿈이라고 해도 조금은 피곤했다. 온몸에 피로가 번져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 뜨기조차 싫었다. ‘알람 울릴 때까지 조금만 더 자자.’ 그때 이를 악무는 목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강소희!” 얼음장같이 차가운 소리였다. 강소희는 그대로 받아쳤다. “왜요!” 말이 떨어지자 퍼뜩 소름이 돋으며 눈이 번쩍 뜨였고 정신도 절반은 돌아왔다. ‘혼자 사는 여자 집에 왜 남자 목소리가 있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방금 자신과 관계를 맺은 그 남자가 성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존잘남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화를 내도 이렇게 잘생기다니 말이다. ‘아직 꿈이 안 깬 건가?’ 꿈이라 해도 강소희는 조금 쑥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존잘남 씨...” 그녀는 애써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몸이 체중이 100킬로 넘는 뚱뚱한 여자의 몸이라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얼굴에는 살이 겹겹이 올라와 이목구비가 바싹 몰려 있었고, 그 꼴을 본 김태하는 고개를 홱 돌리며 속이 메스꺼워 거의 전날 먹은 걸 토할 뻔했다. 강소희는 영 불쾌했다. ‘이 남자 제정신이야? 누구 보라고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화가 나는 건 그녀였다. 이런 일은 어차피 여자 쪽이 손해인데, 그녀가 아직 뭐라고 말도 안 했는데 먼저 역겨운 척한다니 말이다. ‘쳇, 가식 떨기는!’ 몸을 조금 움직이자 불편함이 밀려왔다. 특히 아래쪽에서 말이다.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니 온몸에 푸르죽죽한 멍과 애매한 붉은 자국이 수두룩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팔을 세게 꼬집었다. “쓰읍!”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팠다. ‘그렇다면 이거 꿈이 아닌 건가?’ 강소희는 곧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이곳은 그녀의 집이 아니었고, 곳곳에서 구시대적인 냄새가 났다. 방 안 가구도 죄다 올드했고, 장 위에는 예스러운 그림과 찻잔이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소름이 돋은 건 벽에 걸린 달력. 날짜가 1980년 5월 1일이었다. ‘1980? 나 과거로 온 건가?’ 거울 속의 사람을 보는 순간, 강소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 돼지야!” 거울 속 여자는 얼굴 가득 기름기가 번들거렸고, 살이 눌러 이목구비 윤곽도 흐릿했다. 이마와 턱에는 여드름까지 몇 개 솟아 있었고, 몸은 더더욱 거대했다. 강소희가 얼굴을 만지자 거울 속 여자도 얼굴을 만졌다. 굵은 팔뚝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태하의 입가가 씰룩였다. ‘이 여자가 억울한 척까지 하네.’ 분명히 그녀가 약을 먹여 두 사람이 관계를 맺었는데, 이제 와서 가련한 척하는 것이 어이없기만 했다. “강소희, 그만하면 됐어.” 하지만 강소희의 귀에 남자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녀는 21세기 신시대 여성. 집도 차도 있고, 얼굴도 괜찮고 돈도 있었다. 살림살이야 말할 것도 없이 달콤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의식주가 모자란 80년대로 날아와 버렸다. 그것도 엄청난 뚱녀로 말이다. 더 절망적인 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기억이었다. 그녀는 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것도 ‘재벌 도련님과 사랑에 빠지다’ 속 동명이인 들러리 악역으로. 원작에서 김씨 가문 네 식구는 현북시의 한 가난한 산골로 쫓겨난 적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 흑촌 마을이었다. 정부와의 충돌에서 유배당한 것과 다름없으니 생활도 아주 고단했다. 한 번은 주화영이 하도 굶다가 쓰러질 뻔했고,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남주 김태하가 어쩔 수 없이 강씨네 집 닭 한 마리를 훔쳐 끓였다. 그제야 주화영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 들키고 나서 강준호는 김태하에게 배상하라고 했지만, 그가 낼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강준호가 두 번째 조건을 꺼냈다. 바로 자기 딸과 결혼하라는 것, 그 딸이 곧 이 몸의 주인이었다. 김태하는 당연히 원할 리 없었다. 강준호에게 별별 보증과 좋은 말을 다 하며 나중에 돈을 벌면 반드시 두 배로 보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기 딸 꼴이 그 모양이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독한 말을 내뱉었다. 돈으로 갚든가, 아니면 그의 딸과 결혼하든가. 아니면 바로 촌장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김씨 가문은 정부의 눈 밖으로 난 상황에서 남주가 닭을 훔친 일까지 신고당하면 감옥까지 갈 수도 있었다. 과장이 아닌 그 시대가 딱 그랬다. 엄격 단속 기간에는 밖에서 입맞춤만 해도 총알맛을 볼 일도 있었다. 냉혹한 현실에 김태하는 고개를 숙이고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강소희에 대한 감정이 없었고, 결혼 자체도 강요된 것이었다. 결혼한 지 3년, 둘은 같은 곳에 누웠어도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건 강소희의 부모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남주에게 시집갈 때 강소희는 겨우 열여섯이었고, 애를 낳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였다. 강소희의 어머니는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라 제법 사리를 아는 편이었다. 1980년, 정책이 바뀌면서 김씨 가문은 마침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김씨 가문이 경운시에 두었던 재산도 돌려줬다.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돌아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또 하나의 문제가 눈앞에 놓였다. 김씨 가문이 도시로 돌아가면 강소희는 어쩌나? 같이 경운시로 데려갈까? 주화영은 그 못생기고 뚱뚱한 며느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꽉 막혔다. 아들이 자기 때문에 강소희와 결혼한 거라 줄곧 마음에 걸렸다. “안 돼, 소희를 데리고 돌아갈 수는 없어. 그러면 태하 인생에 걸림돌이 될 거야.” 주화영은 강소희의 부모를 찾아가서 말했다. “두 아이는 혼인신고도 안 했고, 지난 3년 동안 태하와 소희도 선 넘는 일은 전혀 없었어요. 차라리 제가 소희를 의붓딸로 삼고, 우리가 경운시에 자리 잡으면 소희 명의로 집 한 채를 넘겨줄게요. 그때 두 분도 시에 올라와 살고, 소희한테 경운시에서 알맞는 결혼 상대도 찾아줄게요.” 남주 집안은 인성 하나는 정말 좋았다. 저렇게까지 후하게 나오니 반발할 핑계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말을 아무리 곱게 포장해도 강준호는 속으로 알고 있었다. 김씨 가문은 한마디로 강소희를 며느리로 원치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둘이 같은 이불을 덮고 자지는 않았어도, 한 집에 3년을 누웠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게다가 강소희의 꼴이 이 모양인데, 정말로 김태하와 깨지면 앞으로 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집을 넘겨준다는 얘기는 솔깃했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경운시로 돌아가 버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어쩌나? 또 말을 세게 했다가 김씨 가문 사람들을 화나게 하면, 가볍게 엉덩이나 털고 떠나 버려도 속수무책이었다. 차라리 아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두 사람을 선 넘게 만드는 것이 좋아 보였다. 김태하의 인성을 봐서라도, 자기 딸과 잤다면 분명 책임질 것이다. 발뺌이라도 하면 바로 그들을 희롱으로 신고해 버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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