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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강준호는 말로는 시원하게 승낙해 놓고 돌아서서는 돼지 교배용 약을 사 와 김태하의 술에 타 넣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이 벌어졌다. 김태하는 강소희가 서럽게 우는 걸 보고 생각했다. ‘내가 화낼까 봐 일부러 무고한 척하는 건가?’ 정말 위선적이었다. 김씨 가문에서 그녀를 의붓딸로 삼자고 했을 때도 줄곧 울기만 하며 그런 식으로 항의하더니, 결국에는 강준호가 가장의 위신으로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그랬던 여자가 돌아서서는 내 술에 약을 탔어?’ 여자를 때리지 않아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강소희는 얻어맞고 정신 못 차렸을 것이다. 김태하는 장인이 짐승용 약을 탔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강소희가 넣은 줄로만 알았다. 김태하는 강소희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녀에게 그런 머리가 어디 있겠나? 이건 그녀의 부모가 짜낸 수고, 그녀는 기껏해야 공범이었다. 강소희는 생각을 정리하고 눈가를 훔치더니 조심스레 불렀다. “김... 태하 씨?” “강소희, 너 정말 비열하다!” 김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남자의 반응을 보고 강소희는 확신했다. ‘젠장, 진짜 악역으로 빙의했네!’ 원작대로라면 약을 탄 일로 남주는 강소희를 완전히 혐오하게 된다. 강소희는 소원대로 김씨 가문을 따라 도시로 돌아갔지만, 부모가 더는 꾀를 내주지 못해 날마다 빈방만 지켰다. 게다가 약을 먹이는 것도 첫 번째만 통하지, 김태하가 얼마나 멍청해야 두 번째까지 통하겠는가. 남주는 정말 대단했다. 지난 일 때문에 생긴 제한으로 대학교는 갈 수 없었으나, 날카로운 상업 감각으로 좋은 기회를 붙잡아 금세 재벌이 되었다. 후에는 주식시장에서도 큰돈을 벌어 단숨에 화국 제일 재벌이 되었다. 여주와 사랑하게 된 뒤, 김태하는 이혼을 제안하며 강소희에게 자산의 2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화국 재벌의 20%면 강소희가 10번 환생해서 놀고먹어도 남을 돈이었다. 하지만 강소희는 만족을 몰라 끝내 이혼을 거부했고, 김태하의 아내 자리를 고집했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길을 곳곳에서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사람을 사서 여주 송하은의 정조를 망치고 그녀를 죽이려 했다. 결과적으로 김태하를 격노하게 만들어 남주 손으로 감옥에 보내졌고, 끝내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을 때도 서른이 채 되지 않았다. 소설로 읽을 때는 통쾌했지만, 막상 책 속 악역이 되고 보니 강소희는 담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멍청해. 쉽게 부자 될 기회가 있는데 굳이 자기 손으로 인생을 망치다니.’ 그래도 이미 와 버렸으니 받아들여야 했다. 이 몸의 주인이 저질러 놓은 엉망진창도 수습해야 했다. 우선은 남주가 자신을 덜 미워하게 만들어야 했다. 비록 가능성은 낮지, 김태하 마음속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바꿔야 했다. “저... 아파요...” 강소희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둘 다 처음이었고, 김태하는 약까지 먹어 밤새 그녀를 지치게 했다. 어쩌면 이 몸의 주인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죽어버려 자신이 이렇게 책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걸지도 몰랐다. 김태하는 그녀의 몸에 든 멍을 보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어젯밤 일도 완전히 기억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중에 약기운이 가신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강소희는 훌쩍이며 그만하자고 연거푸 말했다. 속에 맺힌 악감정이 있어서였는지, 하다 보니 쾌감이 올라 한바탕 제대로 고삐가 풀어 버렸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대충 옷을 챙겨 입더니 밖으로 나갔다. 강소희는 몰래 그의 동작을 살피다, 그가 나가는 걸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 그러면 알몸으로 둘만 한 방에 있는 게 너무 민망했다. 잠시 뒤, 나갔던 남자는 금세 돌아와 연고 하나를 내밀었다. “네가 알아서 발라.” 염증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였다. 강소희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약을 먹은 데다가 그렇게 싫어하는 뚱뚱한 여자와 관계까지 맺었으니 속이 답답할 법했다. 소설로 볼 때도 남주가 악역에게 더럽혀지는 그 대목은 정말 분통이 터졌다. 악역의 식구들도 정말 염치도 없고 비열했다. 그녀가 연고를 받으려 손을 뻗자 두 사람의 손끝이 스쳤다. 찌릿한 전기가 튀었고, 김태하는 몸을 굳히며 재빨리 손을 거뒀다. “어젯밤 일 정말 죄송해요!” 강소희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줄 알아?” 김태하는 싸늘한 얼굴이었다. 어젯밤만 떠올리면 화가 치밀었다. “알아요. 사과 한마디로 상처가 줄지는 않겠죠.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때리든 욕하든 다 따를게요.” 이 몸은 어려 보이고 목소리도 듣기 좋아, 거기에 일부러 낮춘 태도까지 더해져 더 안쓰럽게 보였다. 김태하는 가슴속에 막혀 있던 기운이 알 수 없이 절반쯤 가셨다. ‘됐어. 여자랑 따져서 뭐 해.’ “내가 책임질게.” 강소희는 멍해졌다. 원작처럼 울고불고하며 협박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그가 먼저 책임을 말하다니 말이다. “필요 없어요. 어젯밤은 제 잘못이에요. 사과드려요. 화나면 마음대로 때리거나 욕해도 돼요. 괜찮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요.” 그건 속마음이었다. 그의 얼굴에 감탄은 했지만 소설 속 비참한 결말을 떠올리면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강소희는 남자가 믿지 않을까 봐 다시 말했다. “태하 씨는 하늘이 내린 인재고,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특별한 시기가 아니었다면 평생 엮일 일도 없었겠죠. 정말 책임지지 않으셔도 돼요.” 김태하는 그만 연기하라, 이렇게 소동 피운 게 결국 얹혀 가려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의 가련한 모습에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렇게 정하자. 너 나랑 같이 경운시로 가. 네 나이가 차면 우리 혼인신고 해.” 남자의 뜻은 이미 굳었다. 강소희는 입을 달싹였다가도 반박을 삼켰다. 남주는 한 번 말하면 번복이 없다. 괜히 더 떠들다가는 그녀가 밀당하는 걸로 오해할지도 몰랐다. 차라리 김태하가 재벌이 된 뒤 먼저 이혼을 제안하고, 돈을 잔뜩 주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때가 되면 나눠 받은 돈으로 연하남을 찾아 마음껏 즐기면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김태하를 보니, 그야말로 돈을 몰아주는 재물의 신 같았다. 여자의 눈빛 속 뜨거움을 느낀 김태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연기였지!’ ... “뭐라고?” 김씨 가문 사람들은 일제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주화영은 더더욱 못 믿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태하야, 너 정말 소희까지 데리고 돌아갈 거야?” 김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제가 취해서 소희랑... 아무튼 나이가 되면 소희랑 혼인신고 하겠습니다, 어머니.” 김태하는 강소희가 약을 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둘의 인연은 그 닭 탓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어머니가 분명 자책할 것이다. 강소희가 미울지라도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어머니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김태하의 여동생 김은서도 멍해졌다. “오빠, 도대체 얼마나 취한 거야.” 강소희 같은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에게도 입을 댈 수 있다니, 정말 불 끄면 천하 여자 다 똑같다는 말인가? 주화영은 남편 김성철과 눈을 마주쳤다. 의심이 스쳤다. 어젯밤 김태하는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그 정도로 분별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소희와 한방에서 3년을 누워도 선을 넘지 않던 애가, 왜 어젯밤에는 술김에 실수를 했을까. 뭔가 수상했다. 눈빛이 오가자, 말하지 않아도 모든 진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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