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어제 그 밥만 안 먹으러 갔으면 됐는데.”
김은서는 속이 상했다.
어젯밤 강씨 가문에서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 김씨 가문이 도시로 돌아간다며 축하한다고 말이다. 안 갔으면 김태하가 술을 안 마셨을 것이고, 그러면 강소희와 한자리에 눕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큰일이었다. 그 뚱뚱한 여자를 떼어낼 수가 없어서 진짜 올케가 되어 버렸다.
김은서는 김태하가 정말 딱했다.
김태하는 어릴 때부터 잘생겼다. 경운시에서도 좋아하는 여자가 적지 않았다. 집안이 화를 당해 이곳으로 오지만 아니었으면, 시골 뚱보 강소희가 무임 승차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됐어, 이미 정해진 일이야.”
김태하가 못 박았다.
마을 사람들은 입이 가볍다. 그가 도시로 돌아가면 강소희의 얘기가 어떻게 돌지 모른다. 비록 지난 3년 사이 뭐 하나 없었다 해도 남들은 그렇게 믿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강소희를 함께 경운시로 데려가 집 한 채를 그녀의 명의로 옮겨 주려 했다. 그러면 나중에 농촌이 싫어지면 들어갈 집이라도 있게 말이다.
김태하는 정말 강소희를 생각했다. 농촌은 남아선호가 심해 여자는 크면 제 집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정말로 강소희와 관계까지 맺었으니 더더욱 책임져야 했다.
...
김태하가 나가자, 강소희는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아래를 씻고 연고를 발랐다. 서늘함이 스며들어 통증이 한결 가라앉았다.
강소희는 입꼬리를 올렸다.
‘남주가 의외로 세심하네.’
이 몸뚱이는 정말 사람 잡았다. 몇 걸음만 걸어도 머리끝까지 땀이 나고 숨이 가빴다.
강소희는 나중 세상에서 본 숏폼 영상의 뚱뚱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늠했다. 이 몸의 체격으로는 적어도 100킬로는 되었다. 이 시절에는 농가에서 1년 키워 출하하는 돼지가 100킬로까지 자라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강소희는 더 울고 싶어졌다.
“얘야, 어디 불편한 데 없니?”
문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자, 강소희는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었다. 소설 속 강소희의 어머니 허미경이었다.
허미경은 전형적인 농촌 아낙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마른 몸, 한 줄기 바람에도 쓰러질 듯한 모양새, 영양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나랑 체격을 좀 나눠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얘야, 왜 멍청한 짓을 하니? 아직도 아프니?”
여자는 처음이면 다 아프다. 그다음부터는 괜찮아진다.
허미경은 일이 틀어질까 딸이 걱정되어 어젯밤 바깥에서 한참이나 몰래 엿들었다. 기척을 확인하고서야 만족스레 돌아가 남편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강소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허미경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그 눈길을 따라간 순간 강소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부자리에 찍힌 핏자국. 이제 소녀에서 여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불에는 남주의 흔적도 적지 않았다. 강소희는 황급히 더러운 침대보를 치웠다.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따가 바로 빨래할게요.”
이 몸은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다. 어젯밤 체력을 너무 써서 강소희는 일단 숨 좀 고르고 이부자리는 아직 손도 못 댔다.
허미경의 입가가 올라갔다. 딸과 사위가 방을 치렀다니 좋은 일이다.
“너랑 태하는 이미 방을 치렀는데, 그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이래?”
또다시 의붓딸 운운하는 소리는 안 된다. 허미경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를 데리고 경운시로 같이 가서 나이가 차면 혼인신고 하자고 했어요.”
강소희는 남주의 뜻을 엄마에게 전했다.
허미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편과 그녀는 김태하가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딸과 잤다면 반드시 책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됐지, 됐어!”
김씨 가문이 경운시 집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에 허미경은 흡족했지만, 강준호는 아내보다 더 멀리 내다봤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백성이었다. 진짜 도시에 들어가면 일도 없고 땅도 없었다. 그럼 집만 끼고 입에 풀칠하며 살라는 건가.
강준호는 다시 허미경에게 김씨 가문과 사돈 맺는 이점들을 풀어놓았다. 사위네가 돈이 있으니 앞으로 집안 아들 둘에게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허미경은 남편 말에 넘어가 결국 약 타는 일을 벌였다.
강소희가 일어나려 하자 허미경은 급히 딸을 눌렀다.
“오늘은 그냥 누워 하루 푹 쉬어. 내일이면 김씨 가문이 경운시로 돌아가잖니. 이따가 엄마가 설탕 넣은 달걀 삶아 줄게. 기운 좀 차려.”
허미경은 침대보도 빨아 주겠다 했지만 강소희가 맡길 리 없었다.
그 위에는 그녀와 김태하가 한밤에 남긴 흔적이 적나라했다. 이 망신을 엄마에게 보일 수는 없다. 딸이 부끄러워하는 걸 본 허미경은 더는 고집하지 않고 웃으며 설탕 달걀을 만들러 갔다.
...
김태하가 강씨 가문으로 돌아오니, 강소희가 마당에서 침대보를 빨고 있었다. 몸집이 너무 커서 엉덩이를 빼고 반쯤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눈을 어지럽힐 정도였다.
어젯밤 두 사람은 밤늦도록 뒤엉켰다. 김태하는 침대보의 난장판을 떠올리며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그는 다가가 강소희 손의 대야를 가로챘다.
“내가 빨게. 너는 가서 앉아 있어.”
강소희는 이번에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엄마가 빨아 준다 하면 민망했을 것이지만 김태하가 빨겠다면 거리낄 게 없었다.
침대보는 둘이 함께 더럽힌 것이니 그가 빠는 게 맞았다. 게다가 남자가 먼저 나서는데 굳이 막을 이유도 없었다.
강소희는 속으로 감탄했다. 남주는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빠른 것이 진짜 좋은 남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들러리 악역, 두 사람은 인연이 없었다.
“좋아요, 그럼 부탁해요.”
강소희가 일어나려다 덩치 탓에 반쯤 쭈그린 채 다리가 저려 휘청했다.
김태하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이 거대한 몸집으로 한 번 넘어지면 강소희만 손해였다.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