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나 송지안은 병상에 누워 학술 교류 관련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때 임우진이 불쑥 나타났다.
“기분은 어때? 좀 나아졌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고 손에는 아까 강아름에게 사줬던 것과 같은 매장의 죽이 들려 있었다.
송지안은 속이 울렁거렸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거에요?”
“요즘 내가 너한테 좀 소홀했지. 너도 알잖아. 아름이는 집안 형편이 별로 안 좋고 항상 외로움 속에 살아서 불안해해.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을 땐 그냥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네가 예전에 말했잖아,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 복으로 돌아온다고. 난 단지 우리 미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그녀는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임우진을 구했고 집이 어려운 강아름을 먼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게 그저 우스운 희극이었다.
송지안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임우진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네가 평소에 아름이한테 너무 엄하게 군 탓도 있잖아. 그 애가 그렇게 불안해진 것도 네 탓이야.”
강아름에게 엄격하게 대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의학 공부는 원래 고되고 엄한 스승 아래에서야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 쌓아온 의학 지식으로 강아름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강아름은 오히려 정직함 대신 편법으로 성공하려 들었다.
송지안은 그녀가 돈 있는 환자 가족이나 상사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남의 가정을 깨뜨리면서까지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성공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강아름이 정말 임우진을 사랑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웠다.
지금의 임우진은 다만 사업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고 돈을 좀 번 남자일 뿐이다.
말끔한 옷차림에 잘생긴 외모의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물론 이제 그런 일은 송지안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녀는 그를 무시했다.
그 무심한 반응이 임우진을 점점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는 임도현을 힐끔 보았고 임도현도 마지못해 다가왔다.
“엄마, 화 풀어요. 내가 엄마한테 뽀뽀 한 번 해줄게요.”
그러곤 눈을 꼭 감고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얼굴을 내밀었다.
임도현은 어려서부터 청결에 집착해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심지어 송지안조차 안아주길 거부했다.
처음엔 송지안도 그게 성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전 강아름에게 포도를 까주며 웃는 모습을 본 뒤로 알게 됐다.
가까이하지 않은 이유가 아니라 가까워질 혈연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이제는 강아름을 위해서라면 자신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아이였지만 너무 늦었다.
그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송지안의 마음속 애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괜찮아요.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이유 없는 방문은 없었다.
임우진이 그녀를 돌보러 온 게 아니라는 건 뻔했다.
“곧 도현이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있는데 당신은 몸이 안 좋으니까 아름이가 대신 가는 게 어때?”
그 말이 끝나자 송지안은 피식 웃었다.
강아름은 이제 그녀의 아내 자리뿐 아니라 어머니의 자리까지 대신하려는 거였다.
어차피 그 두 자리는 이제 다 버린 것들이니까 그냥 다 가지라고 할 작정이었다.
쓰레기통에서 줍는 건 그들의 몫이었다.
임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그렇게 웃겨?”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녀의 담담한 대답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
“화 안 나?”
“안 나요. 당신이 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내가 왜 화를 내요?”
임우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눈앞의 송지안은 예전과 달랐지만 정확히 뭐가 다른지는 몰랐다.
아마도 송지안이 이제 모든 걸 체념했다고 여기고 오히려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냥 학부모 회의 참석뿐이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녀를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리려 했다.
그러나 송지안은 몸을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은 허공을 헛돌았고 임우진은 멈칫하며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