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예우미의 발걸음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선 사람이 그라는 걸 알아차리고도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한때의 수줍은 애정도, 따뜻한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나쳐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정윤재는 잠시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굳었다가, 이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았다.
“우미야, 나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잖아! 네가 화난 거 알아. 때리든 욕하든 다 괜찮아. 제발 무시만 하지 마!”
그제야 예우미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그녀의 눈빛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돌덩이처럼 냉담하고 공허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빙 돌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윤재는 꽃을 든 채로 그 자리에 굳어졌고 억지로 걸어 올려졌던 미소도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철저히 외면당한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라면 언제나 통하던 매력과 집안의 배경, 자신이 자부하던 모든 것들이 이 여자 앞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 속에서 치욕과 좌절 그리고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억울함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예우미!”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이를 악물며 외쳤다.
“네가 이럴수록 나는 더더욱 널 갖고 싶어져! 넌 반드시 다시 내 여자가 될 거야. 두고 봐!”
한편, 한국에 남은 정이현은 겉으론 박경하와 다정한 연인 행세를 하며 모두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의 시선은 늘 휴대폰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은밀히 붙여둔 사람들이 꾸준히 정윤재와 예우미의 동향을 보고해 왔다.
[이틀째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으나 철저히 무시당함.]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 들킴. 예우미 양, 다른 길로 돌아감.]
[몇억짜리 보석을 선물로 보냈으나 그대로 반송됨.]
[식당에서 우연인 척 마주치려다 예우미 양 단번에 자리를 뜸.]
하나하나의 보고가 마치 작은 비수가 되어, 정이현의 가슴을 찔렀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이 흐트러졌고 밥을 먹다 말고는 문득 그녀의 차디찬 눈빛이 떠올랐다.
심지어 박경하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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