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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 자각은 마치 벼락처럼 정윤재의 머릿속을 내려쳤다. 모든 욕망은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졌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끝없는 공허와 자신에 대한 극심한 혐오뿐이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거칠게 밀쳐냈다. 예상치 못한 거절에 당황한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채 얼어붙었고 그는 짜증스러운 듯 손을 뻗어 머리맡의 술잔을 움켜쥐곤 한 모금에 들이켰다.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가.” 여자는 짧은 욕설을 뱉으며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조용해진 호텔 스위트룸. 정윤재는 무너져 내리듯 소파에 몸을 던졌고 한 팔로 눈을 가린 채 천장을 향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한편, 국내. 정이현과 박경하는 캠퍼스에서 단연 돋보이는 커플이었다. 어디를 가든 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고 두 사람은 주변의 부러움 어린 시선을 한껏 즐겼다. 하지만 그 ‘완벽해 보이는 관계’ 아래, 아무도 모르게 스며든 균열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정이현은 더 이상 그녀와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데이트 중에도, 그녀의 정성껏 꾸민 옆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느새 론던스로 멀리 날아가 있었다. ‘지금쯤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부하가 보내오는 보고서엔 늘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정윤재, 또 한 번 거절당함.]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통쾌함이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곧이어 밀려오는 건 더 짙은 불쾌감이었다. 동생이 아직도 그녀 곁을 맴돌고 있다는 현실이, 정이현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이현 오빠?” 박경하가 그의 팔을 살짝 흔들며 입술을 내밀었다. “내 말 듣고 있어? 나 아까 그 신상 목걸이 얘기했잖아. 이번 주말에 같이 보러 가면 안 돼?” 정이현은 멍하니 떠 있던 정신을 붙잡고는 짜증이 스친 눈빛을 애써 감추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래. 가자.” “요즘 왜 자꾸 그래?” 박경하는 그의 무심한 태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는 눈가를 붉히며 목소리를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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